절정 향해 가는 재일조선인 일가 대서사…'파친코'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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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2차대전 패전·거품경제 붕괴 직전 시점부터 전개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내를 우예(어떻게) 찾았습니까?", "찾을 필요도 없었어. 놓친 적이 없으니까."
1945년 오사카.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밀주를 팔다가 붙잡힌 김선자(김민하 분)는 뜻밖에 쉽게 석방된다. 무거운 벌을 내리기로 유명한 판사는 선자에게 "운 좋은 줄 알라"는 의문스러운 말을 남긴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선자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일본에서 성공한 조선인 사업가이자 선자의 옛 연인, 선자가 낳은 첫째 아들의 친아버지인 고한수(이민호)다. 부산 영도에서 헤어진 지 14년 만의 재회다.
일본의 패전을 예감한 한수는 선자에게 자신이 그간 몰래 선자와 아들을 지켜봤다고 털어놓으며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선자가 유치장에서 풀려난 것은 한수가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자는 남편 백이삭(노상현)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삭은 선자가 한수의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도 결혼한 선량한 사람이지만,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다.
그런 선자의 말에 한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말한다. "너, 진짜 그놈한테 마음이 있구나."
일제 치하의 한반도를 떠나 일본에 정착한 재일 교포 가족의 한 맺힌 일대기를 다룬 애플TV+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 시즌2가 베일을 벗었다. 이달 23일 첫 회를 공개했으며 10월 11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에 한 회씩 공개될 예정이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 작가가 쓴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해방 전후 한반도를 떠나 일본과 미국에 정착한 한인 이민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다.
드라마는 시즌1에 이어 시즌2에서도 젊은 시절 선자(김민하)의 이야기와 노년에 이른 선자(윤여정)의 이야기를 번갈아 보여준다. 양쪽 모두 시즌1의 인물과 이야기가 그대로 이어진다.
젊은 시절 선자의 이야기 속 주인공이 선자 자신이었다면, 그가 노년이 된 1989년 이야기 속 주인공은 손자인 솔로몬(진하)이다. 시즌1에서 솔로몬은 세계적인 은행에 다니다가 계약을 망친 탓에 해고되는데, 시즌2에선 펀드 투자금을 모집하는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솔로몬은 미국에서 예일대를 졸업한 엘리트지만, 일본의 유명 사업가에게 미운털이 박혀 투자금을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파친코를 운영하는 아버지 모자수(소지 아라이·박소희)가 1억엔을 선뜻 투자하겠다며 수표를 내미는데, 솔로몬은 달갑지 않은 기색이다.
솔로몬은 아버지 모자수와 할머니 선자가 얼마나 고생하며 자신을 키우고 유학까지 보냈는지 잘 알고 있고, 그만큼 늘 빚을 진 기분에 시달리며 살아왔다. 그는 결국 할머니 선자 앞에서 수표를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너무 힘들어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저, 할매(할머니)를 계속 불쌍해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파친코'의 연출 방식은 과거와 미래에 서로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즌2 첫 회에서는 젊은 시절 선자가 밀주를 만들어 암시장에 파는 장면과 노년이 된 선자의 아들 모자수가 파친코를 개업하는 장면이 교차한다. 가난하던 선자는 아들이 파친코를 운영하고 손자를 미국에 유학 보낼 정도로 부유해졌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노년의 선자가 가게에 가서 "미리 주문한 50인분 케이크를 달라"고 하자, 직원은 조그만 케이크를 건네면서 "엉터리 일본말이라 주문을 알아듣지 못했다"고 비아냥댄다. 그런 직원에게 솔로몬은 "당신이 한 달에 벌 돈을 나는 하루에 번다"고 핏대를 세우며 화를 낸다.
선자 가족이 과거의 가난에서는 벗어났을지 몰라도 이른바 '자이니치'(在日·일본에서 재일 한국인을 부르는 표현)로서 느끼는 소외감과 고립감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파친코'는 시즌1에서 코고나다, 저스틴 전 감독이 공동 연출했던 것과 달리 시즌2에서는 리앤 웰함, 진준림, 이상일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이상일 감독은 재일교포 3세다.
연출자는 달라졌으나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교차해서 비교해 보여주는 방식, 등장인물들이 파친코를 배경으로 춤을 추는 오프닝 장면 등 전작에서 호평받은 특징을 유지했다.
아울러 이전 시즌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윤여정과 김민하, 진하, 이민호 등 주연배우들이 모두 출연한다. 윤여정은 시즌2에서 선자의 특징인 어눌한 일본어 연기도 선보였다.
시즌2는 특히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패전을 눈앞에 둔 1945년, 이른바 '거품(버블) 경제'의 붕괴가 점차 다가오던 198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시즌1보다 더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잘못으로 벌어진 패전과 거품 경제 붕괴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재일교포들에게도 커다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이 같은 아픔이 시즌2에서 어떻게 표현될지 주목된다.
다만 '파친코'는 4세대에 걸친 긴 이야기를 다룬 만큼 집중해서 시청하지 않으면 몇몇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시즌1에서 내용이 곧바로 이어져 시즌2부터 시청할 경우 전후 사정이나 인물의 성격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시즌1은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최우수외국어시리즈상, 제32회 고섬 어워즈 최우수장편시리즈상 등을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