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 가시지 않은 가을 극장가 찾아온 섬뜩한 스릴러 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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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과 '스픽 노 이블'…갇힌 곳에서 빠져나가려는 사람 이야기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달력상으론 이미 가을인데 아직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에 지치는 요즘 극장을 찾은 관객이라면 서늘한 기운을 풍기는 스릴러 영화에 끌릴 법도 하다.
독특한 설정이 돋보이는 할리우드 스릴러 두 편이 국내 극장가를 찾아왔다. 오는 18일 개봉하는 '트랩'과 11일 극장에 걸린 '스픽 노 이블'이다.
'식스센스'(1999)의 M. 나이트 시아말란 감독이 연출한 '트랩'은 10대 딸 라일리(아리엘 도너휴 분)를 데리고 팝스타 공연장에 간 중년 남성 쿠퍼(조시 하트넷)의 이야기다.
공연장에 무장 경찰이 속속 배치되는 것을 보면서 심상치 않은 일이 전개되고 있음을 직감한 쿠퍼는 공연이 연쇄살인범을 잡으려는 거대한 덫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3만명의 관객으로 혼잡한 공연장 어딘가에 무시무시한 연쇄살인범이 들어와 있다는 설정은 다른 영화에서 접하기 힘든 독특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기도 전에 연쇄살인범의 정체가 드러나고, 경찰이 치밀하게 짜놓은 그물망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러면서 전반부의 팽팽한 긴장감은 힘을 잃는 느낌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긴장감을 살리려고 했지만, 몇몇 설정은 다소 작위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조시 하트넷과 아리엘 도너휴의 연기는 높이 살 만하다. 호주 출신의 신예 배우인 도너휴는 열네 살의 나이가 믿기 어려울 만큼 라일리의 열광과 불안을 실감 나게 그려낸다.
공연장의 주인공인 팝스타 레이디 레이븐 역을 맡은 살레카 시아말란은 가수이자 배우로, 시아말란 감독의 딸이기도 하다.
할리우드의 스릴러 거장으로 꼽히는 시아말란 감독은 '식스센스'와 같은 작품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끌어들인 세계관을 구축했지만 '트랩'에선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소재로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인다.
'트랩'보다 일주일 앞서 개봉한 '스픽 노 이블'은 공포의 공간에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점에선 비슷하지만, 분위기는 '트랩'과 확연히 다르다.
제임스 왓킨스 감독이 연출한 '스픽 노 이블'은 영국인 벤(스쿳 맥네이리)의 가족이 휴양지에서 패트릭(제임스 맥어보이)의 가족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휴양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벤은 어느 날 패트릭의 초대장을 받고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내러 한적한 시골에 있는 그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불쾌한 일을 하나둘 겪지만 예의상 불쑥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해 난처해진다.
2022년 개봉한 동명의 덴마크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원작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뒤로 갈수록 차이가 벌어진다. 특히 후반부의 긴박한 액션과 할리우드식 결말은 원작과 뚜렷이 대조된다.
'엑스맨' 시리즈에서 찰스 자비에 교수를 연기했던 제임스 맥어보이의 열연이 돋보인다. 그는 친절한 얼굴로 손님을 접대하다가 조금씩 본색을 드러내는 패트릭을 연기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간다.
'스픽 노 이블'엔 낯선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깔려 있다. 그것의 옳고 그름은 논외로 치더라도 이 시대의 지배적인 감정을 반영한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타인이 공포의 대상이라면 그에 대한 예의의 표시로 자신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포기하는 것도 항상 바람직하다 말하기는 어려워진다. 이 영화는 그에 관한 질문도 담고 있다.
'스픽 노 이블'은 공포영화의 명가로 꼽히는 제작사 블룸하우스의 신작이다. 맥어보이는 '23 아이덴티티'(2017)와 '글래스'(2019)에 이어 블룸하우스와 다시 호흡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