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성 촬영감독 "뭔가 하고 죽어야겠단 생각에 자료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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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에 영화 자료 6천여점 기부…'수집가의 영화' 기획전
개막작 '만다라' 상영…"전두환 취임에 분노 느껴 흑백처럼 촬영"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정일성 촬영감독이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에서 취재진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제가 138편의 영화를 찍으면서 38명의 감독과 작업했습니다. 대부분이 고인이 되셔서 지금은 몇 분 안 남아 있어요. '아, 나도 살아 있는 동안에 뭔가를 하고 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가진 자료들을 기증하게 됐습니다."
정일성(95) 촬영감독은 25일 서울 마포구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서 정 감독은 한국영상자료원에 활동 기간 모은 각종 자료 총 6천836점을 기증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자료 중 일부를 선별해 전시하는 기획전을 마련했다. 영화 현장의 뒷이야기를 담은 각종 사진과 정 감독이 시상식에서 받은 트로피, 촬영 장면 기록, 일정 노트, 시나리오, 콘티 등을 시네마테크KOFA 로비에서 볼 수 있다.
정 감독은 "기증해달라는 대학교도 서너군데 있었지만, 영화를 전공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일반인들도 자료를 통해 또 다른 자기를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영상자료원에 자료를 건넸다"며 "영화사에 이러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더 발전한 영화학도들도 나오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에서 방문객들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
이번 기획전에서는 '화녀'(1970·연출 김기영), '문'(1977·유현목), '최후의 증인'(1980·이두용), '만추'(1981·김수용), '황진이'(1986·배창호), '태'(1986·하명중), '서편제'(1993·임권택), '취화선'(2002·임권택) 등 정 감독의 대표작 17편을 상영한다.
개막작은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만다라'(1981)다. 안성기와 전무송이 승려로 분한 작품이다.
정 감독은 "이 영화가 가장 좋기 때문이 아니고 제 생을 통틀어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개막작으로 선보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1980년 직장암으로 대수술을 받은 직후 임 감독이 병원에 찾아와 '만다라'를 찍자고 했다. 영화계에서는 '송장이랑 일을 하느냐, 초상 치를 일 있느냐' 하는 소리가 나왔다"며 "하지만 수술을 끝내고도 바로 촬영할 수 있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카메라를 잡았다"고 회고했다.
정 감독은 개막작 상영 후 김홍준 한국영상자료원장이 함께한 대담과 관객과의 대화(GV)도 이어갔다.
그는 "임 감독이 준 원작 소설을 병원에서 읽는데 몸이 뜨거워졌다"며 "이걸 어떻게 촬영할지 이미지를 디자인하기 시작하면서 회복이 빨라지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정일성 촬영감독이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에서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
이후 수술 부위에 붕대를 감은 채로 '만다라'를 찍을 사찰을 찾아다녔지만, 쉽사리 촬영을 허락하는 곳이 없어 애를 먹었다고 정 감독은 말했다.
현상소에서 필름을 잘못 관리하는 바람에 정 감독의 의도대로 영상이 나오지 않거나, 다른 촬영감독의 실수로 카메라 한 대만을 이용해 화재 장면을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투혼 끝에 완성한 이 작품으로 정 감독은 백상예술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촬영상을 받았다.
'만다라'의 영상적 특징은 초반부 지평선을 비추는 롱테이크 신 등 도전적인 촬영 방식과 차가운 색감이다.
정 감독은 "이 영화를 촬영하러 가는 날이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던 날이었는데, 분노 같은 것을 느꼈다"며 "원래 일반적인 방식으로 찍으려 했지만, 임 감독에게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게 흑백처럼 찍고 싶다고 했다. 분노와 시대정신을 담으려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영화의 격조는 촬영감독이나 감독 혼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저의 제안을 임 감독이 흔쾌히 받아줬기 때문에 '만다라'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정일성 촬영감독이 2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열린 '수집가의 영화: 정일성' 기획전에서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2024.10.25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