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 발발한 美…진짜 일어날지 몰라 더 무서운 영화 '시빌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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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4 첫 블록버스터…대통령 인터뷰하려는 기자들 여정 그려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상)를 그린 할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은 다양한 이유로 멸망한다.
외계의 침공을 받아서,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서, 로봇이 반란을 일으켜서, 소행성이 충돌해서, 기후가 급변해서….
세계 패권국인 미국이 본토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패망하는 것보다 이런 이유로 파멸을 맞는 게 차라리 더 개연성이 높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러나 앨릭스 갈런드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이하 '시빌 워') 속, 내부 분열로 인해 무너진 미국의 모습은 그 어떤 재난 영화보다 두려움을 안길 듯하다.
정치사회가 양극단으로 갈라지고 혐오주의자가 날뛰는 최근 몇 년간의 미국을 보면 언젠가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최근 CNN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2기 전망에 대해 미국인 52%는 낙관적, 48%는 비관적이라고 답했다. 극단적으로 나뉘어진 사회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영화에서 미국은 제삼 세계나 다름없게 변해 있다. 달러 가치는 폭락해 캐나다 달러로 기름을 사고 전기는 언제 끊길지 모른다. 도시 곳곳에는 난민촌이 생기고 도로는 버려진 차들로 가득해 마치 미국 드라마 '좀비 랜드' 속 한 장면 같다.
서부군이 내란을 일으켜 정부에 대항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대통령은 정부군이 거의 기세를 잡았다며 국민을 안심시키는 한편 서부군에 투항을 요구하는 연설을 도돌이표처럼 한다.
로이터 통신 소속 기자 리(커스틴 던스트 분)는 백악관으로 가 대통령을 인터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새미(스티븐 헨더슨) 그리고 기자를 꿈꾸는 소녀 제시(케일리 스패니)가 워싱턴 D.C.로 향하는 여정에 동행한다.
이들이 길에서 마주하는 광경은 공포 그 자체다. 일반 시민마저 장총으로 무장해 가는 곳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모르는 사람끼리라도 눈이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하던 일상은 무너진 지 오래다. 낯선 사람을 의심해 잡아 고문하고 학살하는 게 '뉴노멀'이 됐다.
총알이 빗발치는 교전은 어디에서나 벌어진다. 아무리 'PRESS'(언론)라고 적힌 방탄조끼와 헬멧을 착용하고 있어도 저격수의 총알이 날아온다.
무엇 때문에 총을 잡았는지 목적을 잃은 군인도 있다. 그저 폭력과 살인에 중독된 사람처럼 쉽게 타인을 죽인다. 한 군인(제시 플레먼스)은 리 일행에게 "어디 미국인"이냐고 물은 뒤 고향에 따라 죽여야 할 사람과 살려야 할 사람을 결정하기도 한다.
더 무서운 건 어쩌다 이 모든 일이 벌어졌는지 영화에선 아무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분열로 인해 나라가 갈라졌다고 힌트만 줄 뿐 정확히 무슨 이유로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건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이 때문에 '시빌 워'는 지난 4월 미국 개봉 당시 진보 진영의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극단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등 공화당 인사를 저격하는 영화일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을 기자들로 세운 것도 보수나 진보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리 일행은 정부군과도, 서부군과도 척을 지지 않고 오직 특종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탄탄한 팬층을 거느린 미국 유명 독립 영화 배급사 A24의 첫 블록버스터인 이 영화는 제작비 5천만달러(약 718억원)를 투입해 전 세계에서 1억2천만달러(1천800억원)의 극장 매출을 올렸다. A24 영화 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앤 원스'(1억4천341만 달러·2천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익이다.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서부군의 백악관 진격 신이다. 탱크와 미사일을 앞세워 백악관을 무너뜨린 뒤 이어지는 총격전은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친다. 기술 고문을 맡은 17년 경력의 해군특전단(네이비실) 레이 멘도사가 옛 동료들과 함께 출연해 리얼리티를 살렸다.
이 영화는 최근 12·3 비상계엄 사태를 겪은 우리 국민들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 같다. 앞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오픈 시네마 부문에 공식 초청됐을 당시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이 영화는 무섭다 못해 섬뜩하다, 아마도 현실 세계가 전쟁과 갈등으로 들끓기 때문이리라"라는 평을 남겼다. '1987'의 장준환 감독은 "전쟁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시도가 신선하다"고 호평했다.
12월 31일 개봉. 109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