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 "대자연 속 독립투사의 쓸쓸함 담으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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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거 다룬 '하얼빈'…"흔들리면서도 계속 싸운 사람으로 묘사"
"우리와 동떨어진 영웅 아냐…관객도 동지 의식 느꼈으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우민호 감독의 영화 '하얼빈'은 보는 것만으로도 맹추위가 전해지는 얼어붙은 두만강을 안중근 의사(현빈 분)가 홀로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멀리서 보이는 안 의사의 걸음에서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쓸쓸함이 전해진다.
이 작품에는 독립투사들이 거친 자연에 놓인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드론 촬영으로 등장인물이 작아 보이게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대자연 속, 안중근 의사와 독립투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던 마음이 강했습니다. 일제에 다 빼앗겨서 땅 한 평도 없었을 때인데, 그들이 광활한 대지에 놓였을 때 얼마나 서글펐을까요.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목적을 향해가는 이들에게서 숭고미를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1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우 감독은 작품의 연출 의도를 묻는 말에 "드라마보다는 이미지로 관객에게 각인되기를 원했다"고 답했다.
그는 "배우들을 블루 스크린에 세우지 않을 것"이라며 컴퓨터그래픽(CG)이 아닌 실제 촬영으로 자연을 담아낼 것을 일찌감치 공언했다. 당시 독립투사의 마음이 배우와 관객에게 전해지기 위해선 최대한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봐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화는 만주와 지형이 유사한 몽골과 러시아의 옛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라트비아 등지에서 촬영됐다. 야외 장면은 조명을 전혀 쓰지 않고 자연광을 활용했고, 얼어붙은 호수가 안에서 깨지는 소리 등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녹음했다.
우 감독은 "(원하는) 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기까지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10분만 찍고 돌아온 적도 있다"며 "그 순간이 오기까지를 참고 기다렸다가 총을 당기는 독립투사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이런 촬영 방식 덕에 관객은 안 의사의 인간적이고 고독한 청년으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우 감독은 "안 의사가 슈퍼맨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며 "계속해서 흔들리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새로운 안중근을 만들려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와 동떨어진 영웅처럼 묘사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관객이 '저런 영웅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구나' 생각하면서 동지 의식 같은 걸 느꼈으면 했습니다.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다룬 영화긴 하지만, 내 삶의 목표와 방향성을 안 의사의 상황에 대입해 생각할 수 있도록요."
전작 '남산의 부장들'(2020)로 시대극의 연출력을 입증한 우 감독이지만, '하얼빈'의 메가폰을 잡아달라는 제작사 측의 제안을 처음엔 거절했다. '내부자들'(2015), '마약왕'(2018) 등 주로 사회비판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만큼, 모두가 존경하는 위인을 다룬 영화는 "나와 잘 안 맞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안 의사 관련 책을 접한 것을 계기로 마음을 바꿨다.
"안 의사가 거사를 일으켰을 때가 겨우 서른살이었더라고요. 감사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죄송하고, 무언가 뜨거운 마음도 올라왔어요. 힘든 촬영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각오하고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당초 오락 영화로 기획된 '하얼빈'을 묵직하게 재창조해도 된다는 제작사의 승인을 받은 뒤에야 연출 제안을 수락했다. 가상의 인물이 아닌 잘 알려진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가벼운 방식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극적인 연출이나 '감초' 캐릭터, 신파 요소 하나 없이 내내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전개된다.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장면도 안 의사가 엔딩에서 하는 내레이션이 거의 전부다.
이 대사는 최근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 속에서 이어졌던 국민들의 단결을 떠오르게 해 화제가 되고 있다.
우 감독은 "제가 이런 시국이 올 줄 예상이라도 했겠느냐"며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계속해서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넣은 대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