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김태곤 감독 "이선균 '대충' 없었다…와이어 매고 솔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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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선균 주연 재난 영화…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초청작
"선균이 형도 영화 많이 알리길 바랄 것…감정 과잉 덜고 러닝타임 줄여"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12일 예정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의 개봉은 김태곤 감독에게 경사이면서도 안타까운 감정을 일으킨다.
이 영화는 김 감독이 '굿바이 싱글'(2016)의 성공 이후 메가폰을 잡은 첫 작품이자 처음으로 도전한 대규모 재난물이다.
그는 '탈출'이 제76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되면서 생애 처음으로 칸의 레드카펫도 밟았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를 받으며 개봉일을 조율하던 지난해 12월, 주연 배우인 이선균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탈출'은 추창민 감독의 '행복의 나라'와 함께 이선균의 유작이 됐다.
"'탈출'을 많이 알리고 많은 분이 보도록 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균이 형도 그걸 바랄 거라고 생각하고요."
1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 감독은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홍보 활동 등)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최근 무대 인사를 하러 극장에 갔다가 관객들이 환호하고 박수를 보내는 것을 봤다"며 "그제야 너무 조심스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탈출'은 공항으로 향하는 대교 위에 고립된 사람들이 살상용 군견의 습격을 당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이선균은 딸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안보실 행정관 정원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이선균은 액션, 코미디, 멜로, 공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재난 영화는 '탈출'이 처음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김 감독이 이선균에게 '탈출'을 함께하자고 제안하자 그는 의아한 말투로 "내가"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자신이 블록버스터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김 감독은 "이선균은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배우라 이런 영화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믿었다"며 "구심점이 돼 작품을 끌어나가는 게 굉장한 부담이었을 텐데, 훌륭하게 잘 소화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현장에서 지켜본 배우 이선균은 완벽주의자 그 자체였다.
김 감독은 이선균을 두고 "무엇 하나라도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까다로운 분"이라며 "동선이나 액션에서도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줬다"고 회상했다.
"촬영에 들어가서도 되게 열심히 하는 배우였어요. 클라이맥스인 트레일러 장면을 찍을 때가 특히 그랬습니다. 원래는 트레일러가 다리에 얹어진 느낌이었는데 긴장감이 부족한 것 같아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형태로 찍어보자고 현장에서 말씀드렸어요. 보통 배우들은 상황이 갑자기 바뀌는 걸 싫어하잖아요. 하지만 선균이 형은 '빨리 와이어 가져와, 찍자'라고 하시더니 트레일러를 기어오르셨지요."
'탈출'은 지난해 5월 칸영화제 월드 프리미어에서 상영됐고, 정식 개봉까지 꼬박 1년 2개월이 걸렸다.
김 감독은 칸에서 들었던 평을 바탕으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주로 지적된 이른바 '신파' 요소를 덜어내는 데 집중했다. 상영 시간도 96분으로 줄여 박진감 있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김 감독은 "개봉까지 시간이 있으니 최대한 완성도를 높여보자"는 생각이었다며 "요즘 관객이 뭘 좋아하는지를 살피고 감정이 과잉된 부분을 편집했고 러닝타임도 줄였다"고 설명했다.
CG(컴퓨터 그래픽)로 구현한 군견들이 등장하고, 차량 100중 추돌 사고와 다리 붕괴 등의 장면이 연출된 만큼 '탈출' 제작에는 올여름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 가장 큰 금액인 185억원이 투입됐다. 극장 매출액으로만 따지면 약 400만명이 관람해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한다.
최근 '파묘', '범죄도시 4' 등이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으나, 대부분의 작품은 100만명 턱걸이도 어려운 상황이라 김 감독도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제 영화는 몇 명이 볼지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며 "매일매일 ('탈출' 예매율을) 검색하다 보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고 웃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으니 주어진 일을 끝까지 열심히 해나가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영화 자체는 최선의 버전이었다고 생각해요. 지난주 금요일까지도 후반작업을 했으니까요.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는 됐습니다. 관객들이 좋은 작품은 꼭 보러 올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