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VIBE] 강성곤의 아름다운 우리말'…아웃사이트와 역(逆)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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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이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당신이란 사람 못 견디겠어요. 이기적이고 심술궂고 냉소적이고… 그게 바로 당신의 죄목이에요. 당신은 많이 배우고 정직한 편이죠. 공평하고 양심 바르다고도 할 수 있어요. 대체로 그런 편인 것 부정하고 싶진 않지만, 때론 그런 '장점'으로 상대의 마음을 옥죄고 의견을 짓밟고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주는 것 알아요? 당신은 그 잘난, 나름의 고고한 원칙을 주로 세상을 미워하는 데 쓰죠. 종교를 가진 신자(信者)들을 우습게 알죠. 당신에게 신앙이란 의식의 미성숙과 무식의 징후로 읽히니까. 그런데 당신한테는 신자가 아닌 사람 역시 별로예요. 이번엔 믿음이나 이상이 결여됐단 이유로요. 한편 너무 보수적이고 융통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인들을 싫어하면서, 사고방식이 너무 자유분방하고 전통을 쉽게 저버린다며 젊은이들도 혐오하죠. 당신은 공동체의 덕목을 지키지만, 모든 사람을 늘 의심해요. 사람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게 진짜 당신 속마음이에요. 안 그런가요?"
201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윈터슬립'(Winter Sleep, 2014)이란 제목의 터키 영화에 나오는 대사다. 무려 세 시간 15분짜리 영화다.
젊은 아내 '니할'이 중년인 남편 '아이딘'에게 그동안 참아왔던 감정을 담아 울며 던진 말뭉치다. 양심과 도덕, 정의와 권력, 자선과 명예, 권태와 결핍, 사랑과 구원 등을 다룬 이 놀라운 작품에서 한국의 중년은 내면을 들킨 듯한 당혹감과 더불어 '아 정말 내가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는 반성과 성찰을 품게 된다.
자기만족에 빠진 식자층의 위선,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사회, 기만과 냉소로 얼어붙은 세상, 이 답답하고 부박한 현실 속에서 나는 과연 소방수인가 방화범인가, 아니면 그저 방관자인가?
필자의 생각으로는 40~50대, 소위 7080세대(1970년대와 1980년대 초반에 걸쳐 태어난 세대)가 가장 문제다. '계몽된 지식인'이란 뜻의 터키 말, 주인공 '아이딘'(Aydin)도 바로 그 어름이다.
여기에 돌파구를 위한 두 가지 팁이 있다.
하나는 '아웃사이트'(outsight)다. '외부 관찰력' 혹은 '외면 통찰력'이란 의미다. 이제까지는 인사이트(insight)가 대세였다. 문제가 생기면 심리적, 내재적인 고민을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힘이다.
머리를 쓰고 직감을 발휘하고 무엇보다 과거의 행동 결과에 기반한다.
그런데 아웃사이트는 다르다. 밖에서 얻는 것이다. 이제까지 안 했던 일을 해보고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상식을 뛰어넘는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관점과 시각을 뜻한다.
생각이 넓어지면서 '이건 이래서 그랬던 것이군!' 이렇게 알아채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아웃사이트의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이른바 '게으름의 덫'을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허미니아 아이바라(Herminia Ibarra)의 지적을 눈여겨 볼 만하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 배경,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서로 모두 알고 지내는 경우, 지금과 다른 일을 할 때는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는 경우, 이 네 부류가 '게으름의 덫'에 해당한다.
'익숙한 만남을 혁파하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른 하나는 역(逆) 멘토링이다. 언제부턴가 멘토·멘토링이 대세가 됐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선배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에게 전수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전통으로 자리 잡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게 중장년에게는 독(毒)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신은 늘 가르치는 존재, 무언가를 제시하고 따라오게 만드는 주체로 스스로를 각인시켜 도그마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IE 경영대학원 크리스타 시몬 교수는 일갈한다.
"MZ 세대는 멘토의 경험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저 순수하게 기술적인 지식만을 내려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왜 아니겠는가? 정보도 지식도 음악도 영화도 한순간에 다운받는 것에 익숙한 세대 아니던가.
한참을 듣고 배워 깨달음을 얻는다? 그들은 탐탁지 않게 여긴다. 젊은이들 전문용어로는 '구린' 것이다. 우리야말로 쓴 약을 먹고 기운을 내어 몸을 일으켜야 한다.
점점 갇혀가는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을 더 이해하기 위해, 일상생활에 자신의 기술적인 전문성을 적용하는 젊은이들을 향해 '당신이 부럽다'고 고백하라.
멘토가 아니라 멘티의 자세를 확실히 보여라. 기존의 알량한 지위를 벗어버리고 겉치레와 형식을 멀리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솔직하게 인정하라.
"내 청춘은 어둡고 따분했어.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라, 남을 행복하게 만들 줄을 모르는 것 같아. 미안해."
영화 '윈터슬립'에서 잘난 아이딘이 울먹이는 니할에게 던진 변명이다.
우리 안의 아이딘을 덜어내기 위해서라도 모르는 사람과 젊은이, 이 둘과의 대화와 교유(交遊)가 살길이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역임.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