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철, 소탈한 노래와 미소로 서민 애환 달랜 '트로트 사대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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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전성기 맞아 가수 수명 늘려…녹화 후 술 사주던 푸근한 선배"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싫다 싫어 꿈도 사랑도∼ 싫다 싫어 생각을 말자∼'
지난 15일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현철(본명 강상수)은 입에 잘 붙는 가사와 따라부르기 쉬운 멜로디로 반세기 넘게 대중의 애환을 달랜 서민의 가수였다.
1980~90년대 TV 무대에서 보여준 소탈하고 푸근한 미소는 여전히 대중의 기억에 남아있다.
현철은 '사랑은 나비인가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봉선화 연정', '싫다 싫어' 등의 히트곡을 낸 한국 트로트를 대표하는 가수로 손꼽힌다.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와 더불어 '트로트 사대천왕'으로 불렸다.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는 16일 "현철은 무엇보다도 서민들에게 친근했고 노래가 쉽고 따라부르기 좋았다"며 "정말 친구 같은 인간적인 가수로 보였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철은 1960년대에 데뷔한 뒤 1980년대 히트곡을 연이어 배출하기까지 약 20년간 오랜 무명 생활을 거친 '늦깎이 스타'로도 유명하다.
그는 무명 시절 '현철과 벌떼들'이라는 그룹을 결성해 팝송을 리메이크하기도 했지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솔로로 전향했다.
현철은 그러나 이후 트로트 곡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봉선화 연정'과 '싫다 싫어'로 1989∼1990년 2년 연속 KBS '가요대상' 대상을 받는 뒷심을 발휘했다.
1942년생인 그가 1989년 대상을 품에 안았을 때는 47세로, 중년의 나이에 톱스타의 자리에 올라 1990∼200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했다.
박성서 평론가는 "현철이 우리 가요계에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 가수들의 수명을 늘렸다는 점"이라며 "그전까지는 60세 가까운 나이에 전성기를 누릴 기회가 많지 않았던 풍토가 있었는데 현철처럼 그 나이에 그렇게 왕성하게 활동하며 가요계를 장악했다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현철은 TV에 비친 온화한 모습처럼 무대 뒤에서도 스태프나 후배 가수들에게 따뜻하고 정이 많은 선배였다.
가수 현숙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철과는 생전에 친오빠처럼 지냈다"며 "우리 엄마도 현철이 TV에 나오면 TV에 들어가려는 듯이 가까이 앉아서 챙겨볼 정도였다"며 침통해했다.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도 "현철은 나를 늘 동생처럼 예뻐해 주시던 선배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집에 놀러 가면 꼭 나와 함께 출연한 영상을 비디오로 틀어 놓고 '저거 봐라 아이고 예쁘다' 하며 칭찬해주셨던 기억이 난다. 선배가 아니라 친구 집에 놀러 간 것처럼 편안하게 대해주셨는데…"라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KBS '가요무대'의 최헌 작가는 "인정이 많았던 현철은 술을 좋아해서 녹화 끝나면 좋아하는 친구 혹은 후배 가수들을 데리고 식사를 겸해 꼭 한잔 사고 가셨다"면서 "생전에 술을 좋아했던 송해 선생과도 많이 어울렸다"고 전했다.
현철은 생전 이 '가요무대'의 중요 출연자 중 하나였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2019년, 2020년에도 '가요무대'에 나왔는데 과거와 달리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여 팬과 가요계 관계자들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최헌 작가는 "현철은 경추 수술을 받은 뒤 다리가 저려서 서 있기 불편해해 부축해 드렸던 기억이 난다"며 "마지막 한두 번의 무대는 힘이 없어 부축받아 '가요무대'에 섰다"고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