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 "'고작 이런 일'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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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실습 나선 직업계고 학생들 이야기…"70대 관객도 공감해 눈물"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영화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8.27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일을 해서 자기 밥벌이를 하는 것, 나아가 가족에게도 도움이 되는 건 대단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죠. 누구든 '내가 고작 이런 일을 하고 산다'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란희 감독이 연출한 영화 '3학년 2학기'는 현장 실습을 떠난 직업계고(특성화고) 학생들이 첫 노동 현장에서 겪는 이야기를 그렸다.
이 감독은 특성화고에 진학한 학생들이 느끼는 자조를 들으며 "슬픔을 느꼈다"면서 작품을 통해 모든 노동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연합뉴스와 만난 이 감독은 "특성화고에 진학한 이유를 물어보니 '인문계고 가서 다른 애들 내신 깔아주기 싫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고작 15, 16살 아이들이 성적 때문에 스스로 피라미드의 맨 마지막에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3학년 2학기' 연출을 준비하며 만난 직업계고 관계자들 가운데는 "좋은 직장에 가고 싶었으면 공부를 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는 취업지도 교사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상대평가 속에서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순 없는데, (공부를 잘하는) 소수만이 사람대접받을 만한 이들인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영화 '3학년 2학기' 이란희 감독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8.27 [email protected]
극 중 창우(유이하 분)가 일하는 곳은 기계 소리가 가득한 작업장이지만, 이 감독이 생각하는 '위험한 노동환경'은 공장이나 공사장 등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감독은 "일부 손님들의 폭력적인 언사를 받아내야 하는 상담사나 서비스직,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사무직 노동자들도 위험한 환경에 놓여 있는 이들"이라고 지적했다.
급여를 통해 노동의 대가를 받는다고 해서 신체적·정신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벌러 왔으니 뭐든 감내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것 같다"며 "위험한 환경에서 노동자들에게 주의를 요구하는 것이나, 스트레스에 노출된 이들에게 '멘탈을 키우라'고 하는 것 모두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구조적인 문제나 현실 비판은 영화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 창우가 실습 기간을 거치며 점차 장비나 연장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고 직장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나가는 과정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따라갈 뿐이다.
이 감독은 "주인공이 겪는 비극이 너무 크면 관객들은 이들의 이야기가 자기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장 실습생들의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비극으로 끝나는 현실 비판보다는 동생 같고 이웃 같은 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 이유다.
이런 모습에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이들뿐만 아니라 중년, 노년층 관객들도 '3학년 2학기'를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후기를 전해온다.
이 감독은 최근 시사회에서 '힘들게 산 시절이 생각나 많이 울었다, 잘 살았다고 인정해주는 영화인 것 같았다'고 말한 70대 관객의 후기를 들려줬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다니던 때를 떠올렸다는 50대 관객 등 세대를 불문한 관객들이 '첫 노동의 순간'을 회상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현장 실습생들의 이야기지만 넓게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라며 "사람이 일하다가 죽는 것이 익숙한 사회에서 노동하며 살고 있는 청소년, 청년 노동자들의 이야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