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 김동률과 톺아본 30년 음악 여정…"즐겁고 뜨겁게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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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서 단독 콘서트 '이적의 노래들'
김동률과 카니발 명곡 '찰떡 호흡'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우리의 삶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도 어쨌든 즐겁게, 뜨겁게 여러분과 함께 노래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 이적은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이적의 노래들'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또 곡을 내고 공연을 할 수 있을지"라면서도 이같이 다짐하며 음악에 대한 변함 없는 열정을 드러냈다.
그는 "몇 년 차인지 저는 밝히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한다"며 "그사이 쌓인 노래들이 있는데 그 노래들을 들어주시고, 사랑해 주시고, 이렇게 와서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팬들에게 고마움을 드러냈다.
지난 1995년 패닉으로 데뷔한 이적은 '달팽이', '거위의 꿈', '하늘을 달리다', '다행이다' 등 많은 히트곡을 내며 30년 가까이 꾸준히 사랑받았다.
단독 콘서트로는 2022년 '흔적' 이후 2년 만에, 그것도 대한민국 공연계의 상징적인 장소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적의 노래들'에서 오랜 음악 여정을 함께한 이들 명곡을 선물 보따리처럼 풀어냈다.
이적은 이날 신비로운 바닷속 풍경이 펼쳐진 반투명 전광판을 뒤로 하고 등장해 '웨일 송'(Whale Song)으로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특유의 단단하면서도 정갈한 목소리는 객석을 꽉 채운 관객에게 그윽한 울림을 선사했고, 이는 선선한 가을밤의 정취와 제법 잘 어울렸다.
라이브 밴드의 반주에 맞춰 '반대', '빨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등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가 이어지자 관객은 숨을 죽인 채 이적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내가 버린 건 어떠한 사랑인지 / 생애 한번 뜨거운 설렘인지 / 두 번 다시 또 오지 않는 건지 /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가 발매된 2003년 당시 이 노래를 들었을 소년·소녀들은 이 같은 가사의 의미를 제목 그대로 미처 알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21년이 지나 어느덧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중년 부부 혹은 경력이 쌓인 직장인 등 삶을 관조하는 연령에 달한 관객들은 저마다의 인생 역정을 가슴에 품고 이적이 노래하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음과 음 사이의 떨림과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리는 진지한 무대가 이어지면서 시적인 가사가 한 소절 한 소절 관객의 마음에 화살처럼 '콕' 박히는 것만 같았다.
공연 도중 동료 뮤지션이자 1974년생 동갑내기 친구인 김동률이 리프트를 타고 등장하자 장내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은 1997년 카니발을 결성했을 때처럼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그땐 그랬지', '벗', '거위의 꿈'을 듀엣으로 들려줬다. 이적이 고음을 한음 한음 정성 들여 열창하는 가운데, 김동률은 화음으로 공연의 완성도를 높였다. 이적과 김동률이 콘서트에서 호흡을 맞춘 것은 2015년 이후 9년 만인데도 마치 활동 중인 듀오 그룹처럼 자연스러웠다. 김동률은 17∼20일 모든 공연의 게스트로 나섰다.
두 사람이 '거위의 꿈'의 마지막 소절인 '함께해요∼'를 한목소리로 부르며 '케미스트리'(화학 작용)를 뽐내자, 관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김동률은 "오늘이 공식적으로는 2024년 첫 스케줄"이라며 "작업도 하면서 평범하게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커피 마시고, 식물 물도 주고, 운동도 하고, 시간이 점점 하루하루가 옛날에 비해서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아직 우리 둘이 서로 각자의 음악을 하면서, 이렇게 한 무대에 모였을 때는 또 뜨거운 박수도 받는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김동률은 또한 의미심장한 '벗'의 가사를 23세 때 썼다고 이적이 언급하자 "이렇게 좀 조숙하게 써 놓은 많은 노래 덕분에 제가 아직 먹고 사는 게 아니겠느냐"고 너스레도 떨었다.
김동률은 이날 조만간 신곡이 나온다고 '깜짝' 소식을 알렸고, 이적은 지난달 발표한 신곡 '술이 싫다'의 첫 무대를 선보여 팬들을 기쁘게 했다.
이적은 신곡에 대해 "이 노래는 내가 기존에 썼던 곡들과 결이 많이 다르다. 좀 통속적인 노래를 써 보고 싶었다"며 "노래방에서 약간 취해서 부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내 색깔이 들어 있는, 즉 '(이)적색뽕'을 만들자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적은 이날 공연에서 올해 7월 세상을 뜬 음악 선배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며 고인을 추모하는 시간도 가졌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른 뒤 "참 아름다운 곡"이라며 "(김민기가) 어디선가 듣고 계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또 그가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면서 불렀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느리고 진중한 대표곡이 많은 이적인 만큼, 공연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했다. 하지만 공연 말미 히트곡 '하늘을 달리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관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약속이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신나는 리듬에 몸을 흔들었다. 이적이 "마른 하늘을∼달려∼"라고 가사를 읊자 관객들은 "오오오오!"라고 떼창으로 화답하며 무대를 함께 꾸며나갔다.
"평일의 고단한 하루를 보내시고 오신 여러분들을 만났는데, 한 곡 한 곡을 진심으로 들어 주시고, 박수 쳐주시는 게 너무너무 큰 힘이 됩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