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뒀다 몰아볼래요"…시청자 홀린 부녀 심리전 '이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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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길이도 잰 한석규·표정 바뀌는 채원빈…추리 재미 주는 극본
"불신 파고들자 파탄 난 가족, 그 의미 되새기게 해"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대한민국 최고의 프로파일러로 손꼽히는 장태수(한석규 분)의 딸 장하빈(채원빈)은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아이답지 않게 좀처럼 '까르르' 소리 내서 웃는 법이 없었고, 한밤중에 산속에서 실종됐다가 몇 시간 만에 피투성이인 채로 발견됐던 그날도 얼굴에 눈물 자국 하나 없었다.
딸이 정상적이지 않은 것 같다는 장태수의 촉은 걷잡을 수 없는 의심으로 번진다. 하빈이가 동생 하준이와 함께 실종됐다가 홀로 살아 돌아온 그날 장태수는 어린 딸을 방에 가두고 추궁한다. 결국 "내가 안 죽였어"라는 답을 얻어내고야 마는데, 그 순간에도 장태수는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딸아이를 보며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지난달부터 방송 중인 MBC 금토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사랑하는 자식에 대한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진실로 나아가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처가 세상을 떠나면서 태수는 그새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하빈이와 십여년 만에 함께 살게 된다. 늦게나마 좋은 아빠가 돼보겠다고 다짐해보는데, 시체 없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모든 단서가 딸을 용의자로 가리키자 딸을 한 번이라도 믿어보겠다는 다짐은 금세 무색해진다.
한석규는 자식을 의심하며 무너지는 아버지를 보여주기 위해 일정표에 수염을 깎지 않은 날을 적어가며 극 중 수염 길이까지 계산했다고 한다. 그는 짧은 대사 한마디, 흔들리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배역의 감정을 오롯이 전달하며 몰입감을 끌어올린다.
한석규가 관록의 연기로 극의 중심을 잡는다면, 딸로 호흡을 맞춘 신인 채원빈은 다부진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서늘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할 때는 사이코패스처럼 섬뜩해 보이는데, 이따금 비치는 표정에선 그저 사랑이 고픈 18살 소녀의 외로움이 묻어난다.
작품의 인기 요인으로 영화 같은 영상미도 빼놓을 수 없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감정선을 쫓아가는 이 드라마는 배우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대신 뒷모습을 자주 담아내며 긴장감을 쌓아 올리고, 감각적인 미장센(화면 구성)으로 세련미를 더한다.
촘촘하게 잘 짜인 극본도 추리하는 재미를 안긴다. MBC 극본 공모전을 통해 발탁된 신인 작가 한아영은 시청자의 예상을 비껴가는 전개로 몰입감을 높이며 곳곳에 쌓아둔 복선을 능숙하게 회수해간다.
의심하는 것이 곧 직업인 프로파일러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라나며 더 정교하게 거짓말을 하게 된 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가족의 의미도 되돌아보게 한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이 드라마는 장르적인 성격이 뚜렷하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라고 짚었다.
이어 "현대 사회에서 심화하는 인간관계 속 불신이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가족 관계에서조차 극대화되는 상황을 보여준다"며 "소통 단절을 넘어 서로를 불신하는 상황이 어떻게 한 가족을 파탄 내는지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고 분석했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첫 회 시청률 5.6%로 출발해 6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 7.6%를 기록했다. 시청률 10%대를 넘어선 경쟁작 tvN '정년이'나 SBS '지옥에서 온 판사' 등에 견주면 높은 성적이 아니지만, 화제성만큼은 여느 인기 드라마 못지않다.
온라인에선 "연기, 연출의 퀄리티가 올해 나온 드라마 중 가장 돋보인다", "결말이 궁금해서 아껴뒀다가 몰아봐야겠다", "같이 추리할 사람 구한다" 등의 글이 줄줄이 올라왔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도 높은 순위권을 유지했다. 지난 5일 기준으로 넷플릭스 국내 톱 10 시리즈 부문 1위에 올랐고, 쿠팡플레이와 웨이브에서도 각각 2위, 4위를 기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스릴러는 얽힌 실타래를 풀어내듯이 전개돼 초반부터 대중의 관심을 끌기는 쉽지 않지만, 뒤로 갈수록 힘을 발휘하면서 시청률 상승효과를 누리게 된다"며 "이 드라마는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잘 만든 스릴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진실을 하나씩 파헤칠수록 카타르시스를 주는 여느 스릴러와 달리, 진실을 알게 될수록 주인공이 딜레마에 빠지는 전개가 독특하고 신선하다. 작품 후반부 성적을 기대해볼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