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왕(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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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어둔 창으로 바람이 칩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달리는 차창 밖으로 어김없이 큰 글씨로 쓰인 '왕만두'가 '찐빵'과 함께 눈에 들어옵니다. 살까 말까 갈등하기 일쑤입니다. 그거 한번 먹어보겠다고 가게 앞에 차를 세워놓는 일은 번잡스럽기 짝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왕만두 "하나"로도 넉넉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번잡스러움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입도 달래고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배도 채우고 허기진 마음까지 배를 불립니다. 왕(王)은 낱말 세계에서도 자기가 왕인 양 으스댑니다. 숱한 단어를 양산하는 왕만두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접사 기능이 왕성 - 왕성의 '왕'은 성할 왕(旺)! - 합니다. 말의 앞에 붙어서 '보다 큰 종류', '매우 큰', '매우 굵은', '매우 심한'의 뜻을 나타냅니다. 주로 명사 뒤에 놓여서는 '일정한 분야나 범위 안에서 으뜸이 되는 사람이나 동물'의 의미를 표현합니다.
소나 돼지의 갈비에 살을 이어 붙여 더 크게 만든 갈비인 왕갈비는 요즘 들어 사 먹기가 쉽지 않네요. 값이 너무 올랐습니다. 아쉽지만 왕갈비탕 한 그릇으로 대신합니다. 큰 거미는 왕거미, 고참 중 최고라면 왕고참, 아주 심한 가뭄은 왕가뭄. 이렇게 단어는 제조됩니다. 가수왕, 수능왕, 기부왕, 체납왕, 반칙왕, 컨닝왕(커닝왕). 여기서 왕은 군주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와 닮은 게 틀림없습니다. 좋은 뜻도 나쁜 뜻도 다 가진 것이 성군(聖君. 어질고 뛰어난 임금)일 수도, 혼군(昏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일 수도 있는 왕을 빼 박았으니까요.
별책 부록처럼 "하나"를 더 알아야 '왕'을 익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친족 관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앞에 붙어서 할아버지뻘이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아버지의 고모를 왕고모라 일컫는 식이지요. 마침내 왕은 영어 킹(king)을 써서 크게 열받는다는 뜻의 '킹받다'를, 완전히 인정한다는 '킹정하다'를 낳기에 이릅니다. 젊은이들이 왕왕 - 왕왕의 두 '왕'은 모두 往으로, 여기선 이따금! - 쓰는 낱말입니다.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의 1982년작 영화 『코미디의 왕』(The King of Comedy)은 제목에 왕이 쓰인 걸작으로 꼽힙니다. 유명한 대사 "하나"에도 왕이 나옵니다. 코미디 왕이 되고 싶었던 무명 희극인 루퍼트 펍킨(로버트 드니로 분)의 말입니다. "better to be king for a night than schmuck for a lifetime". 평생을 얼간이로 지내느니 단 하룻밤만이라도 왕으로 사는 게 낫다고요. 펍킨은 잠시나마 왕이 되었지만 곧 위험해집니다. 아니, 이미 위험해졌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email protected])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위키피디아 The King of Comedy (film) - https://en.wikipedia.org/wiki/The_King_of_Comedy_(film)
2. 유튜브 THE KING OF COMEDY Trailer(1982) - https://www.youtube.com/watch?v=0wVhCCo02P4
3. 유튜브 Robert DeNiro Stand-Up Comedy - https://www.youtube.com/watch?v=ajb8wd7jDFU&t=1s
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5. 동아 백년옥편 전면개정판(2021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