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한가운데서 평화주의자 길러낸 학교…애니 '창가의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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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는 말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문제아'라는 단어가 있었다.
한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지나가는 새나 고양이를 보면 꼭 말을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어린이 토토는 바로 이 문제아로 찍혀 초등학교에서 입학 3개월 만에 퇴학당한다.
80년 전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이는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토토를 전교생 50명의 자그마한 학교, 도모에 학원이 받아준다.
극장판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는 문제아라 불리던 토토가 도모에 학원에서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일본 유명 TV 토크쇼 진행자인 구로야나기 데쓰코(黑柳徹子·91)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동명 에세이를 바탕으로 만들었다.
도모에 학원은 요즘 말로 하면 전인교육을 하는 대안학교다.
수업 시간에는 미술, 음악, 국어, 수학 등 학생들이 각자 하고 싶은 과목을 골라서 배울 수 있다.
여름이면 남녀 어린이가 모두 맨몸으로 수영을 하고,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는 리듬 수업도 진행한다.
교장인 고바야시 선생이 남자와 여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친다.
덕분에 문제아 토토, 소아마비로 한쪽 손과 발을 쓰지 못하는 야스아키, 왜소증을 앓는 타이 등이 따돌림 없이 함께 어울려 지낸다.
어린이를 무시하지 않고, 한 명의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고바야시 교장의 철학이다.
토토가 지갑을 찾겠다며 화장실을 헤집어 온 주변을 똥 범벅으로 만들어도 "다 끝나면 (분뇨는) 다시 넣어야 한다"고 말하고 지나갔다는 일화가 그의 성품을 짐작하게 한다.
작품 초반과 중후반에서 고바야시 교장이 거듭 말하는 "너는 사실 훌륭한 아이란다"라는 한 마디는 토토에게도, 관객에게도 큰 위로를 안긴다.
그의 품 안에서 도모에 학원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평화와 평등을 중요시하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다른 학교 아이들이 도모에 학원을 욕하는 노래를 지어 괴롭힐 때도 '도모에 학원은 좋은 학교'라는 답가를 만들어 평화롭게 대응할 뿐이다.
마냥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나면 좋겠지만,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벌이면서 토토의 생활에도 그늘이 드리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 에세이보다도 전쟁의 암울함을 암시하는 장면을 많이 배치했다.
가짜 총과 방독면을 쓰고 전쟁놀이하는 아이들, 징집으로 인해 사라진 남자 역무원, 미국이 적대국이 되자 집에서도 '마마', '파파'라는 영어 표현을 쓰지 말라고 당부하는 아버지 등이 당시의 엄중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토토는 유복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전쟁 말미에는 배급 때문에 배를 곯게 되고, 도모에 학원은 미국의 공습을 받고 불에 휩쓸려 없어진다.
하지만 도모에 학원이 심어준 평화와 평등, 존중의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애니메이션의 실제 주인공인 방송인 구로야나기는 반전 운동가이자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오래 역임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하는 듯하다.
29일 개봉. 113분. 전체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