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보다 당기는 게 情…솜씨있게 빚은 휴먼 드라마 '대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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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끊긴 만둣집에 찾아온 손주들…김윤석 주연·양우석 연출 영화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고층 빌딩이 빽빽하게 늘어선 서울 종로구 사직동에 한옥 한 채가 어색하게 끼어 있다.
'평만옥'이라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6·25 전쟁 때 월남해 자수성가한 무옥(김윤석 분)이 운영하는 이북식 만둣집이다.
무옥은 화장실 문에 '큰 거는 휴지 4칸, 작은 거는 1칸'이라고 적어둘 정도로 노랑이 영감이지만 서울 시내에 건물을 몇 채나 가진 알부자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의대를 다니다 갑작스레 출가해 승려가 된 외동아들 문석(이승기)이다.
자기 아들 때문에 함씨 가문의 대가 끊기게 된 무옥은 조상님을 뵐 낯이 없다.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돈을 쌓아두고 살면서도 정작 그가 가장 부러워하는 건 손주들과 오손도손 만둣국을 먹으러 오는 또래 남자들이다.
하늘이 무옥의 간절함에 화답이라도 한 것인지 어느 날 평만옥에 문석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는 어린 남매가 찾아온다. 문석이 대학 시절 불임 부부를 위해 기증한 정자로 태어났으니 문석은 아버지고 무옥은 할아버지가 맞는다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시선에선 이들의 관계에 고개가 갸웃할지라도 무옥은 뛸 듯이 기뻐한다. 그에게 가족은 곧 '핏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우석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가족'은 무옥이 있는지도 몰랐던 손주 민국(김시우)과 민선(윤채나)을 만나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변호인'(2013), '강철비'(2017), '강철비 2: 정상회담' 등을 선보인 양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가족 드라마다.
한동안 극장가에서 보기 어려웠던 따스한 가족 영화라는 점이 반가움을 안긴다. '집으로'(2003), '과속스캔들'(2008), '7번방의 선물'(2013) 등 흥행에 성공한 가족 영화들처럼 '대가족' 역시 처음엔 좌충우돌과 웃음에 집중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과 교훈을 주는 데 주력한다.
무옥은 구두쇠 같던 면모는 간데없이 손주들을 먹이고 입히며 밀린 할아버지 노릇을 톡톡히 한다. 젊게 보이려 흰머리를 염색하고 옷까지 빼입는 그의 모습이 웃음을 유발한다. 영화 '1987'(2017)에서 무시무시하게 들리던 김윤석의 북한 사투리는 이번 작품에선 정겹게만 다가온다.
문석 역시 코미디의 한 축을 담당한다. 잘나가는 '스타 스님'인 그가 속세로 와 툭툭 던지는 대사에 무방비로 폭소가 터진다.
남매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중반부부터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되뇌게 한다. 2000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지만 가족의 경계가 흐려진 요즘 관객에게 충분히 공감을 살 수 있을 듯하다. 무옥의 심리 변화를 지켜보면 핏줄보다 당기는 건 역시 정(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 작품은 우리는 제각각 살아가는 남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론 등 불교 사상을 활용해 인간 세계의 신비로움을 깨닫게도 해준다. 특히 큰스님(이순재)이 문석의 머리를 깎아주며 깨달음을 주는 장면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문석이 철없이 한 행동이 얼마나 큰 나비효과를 불러오는지, 무옥이 한 결심이 세상에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지켜보는 관객은 죽비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마냥 매끄러운 것은 아니다. 인물의 감정 변화가 다소 갑작스럽고 내레이션이 이어지는 결말 부분은 보는 이에 따라 교조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코미디와 교훈, 감동을 버무려 솜씨 있게 빚어낸 영화라고 평가할 만하다.
양 감독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민국에서 가족은 큰 화두라는 생각이 든다. 저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가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왔다"며 "지난 한두 세대에 걸쳐 가족의 형태와 의미가 굉장히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면들이 영화로는 잘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 '대가족'을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12월 11일 개봉. 107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