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광기 속 동포를 고발한 여인…영화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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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반짝이는 드레스를 차려입은 젊은 여자가 갓 파마한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노래를 시작한다.
백댄서가 분위기를 띄우고 브라스 밴드의 연주는 장내를 가득 채운다. 무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몸을 들썩이더니 이내 환호와 휘파람을 보낸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객을 휘어잡는 여자는 유망한 재즈 가수 스텔라. 미국으로 가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는 게 그의 꿈이다.
브로드웨이 매니저의 명함을 받고 샴페인을 터뜨리는 스텔라에게 창창한 미래만이 기다릴 것 같지만, 3년 후 그가 있는 곳은 군수 공장이다. 가슴팍에 육각성 표식과 '유대인'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채다.
킬리언 리드호퍼 감독의 영화 '스텔라'는 홀로코스트가 절정으로 치닫던 1940년대 독일,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운명이 바뀌어버린 스텔라(폴라 비어 분)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2차 세계대전 중후반기부터 독일 패전 이후 스텔라가 법정에 서기까지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922년 독일의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72세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스텔라 골드슐락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
영화에서 그는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유대인 배지를 달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겁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스텔라는 전형적인 유대인의 외모와는 동떨어진 덕에 게슈타포의 검문을 피해 간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가짜 신분증을 팔던 게 꼬리가 밟히면서 그 역시 나치의 손아귀에 놓이게 된다.
협박과 고문, 탈출이라는 악순환을 겪던 스텔라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갈 것이냐 아니면 베를린에 숨어 있는 유대인들을 고발할 것이냐.
결국 스텔라는 비밀 요원이 돼 동포들을 잡아들이는 데 앞장선다. 함께 음악을 한 동료, 그들의 친구나 가족, 딱 한 번 얼굴을 본 게 전부인 지인 등 스텔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타깃이 된다.
실제 스텔라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나치에 협력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영화는 그를 절대 악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스텔라의 행위를 정당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광기에 휩싸인 시스템이 평범한 한 여자의 인간성을 어디까지 말살하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생존이 저당 잡힌 상황에서 스텔라와 같은 선택을 하지 않을 거라 자신할 수 있는지를 관객에게 묻는 것 같다.
'운디네'(2020)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명배우 폴라 비어의 연기는 스텔라의 양면성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동포를 배신한 부역자이지만 동시에 나치의 피해자이기도 한 스텔라를 비어보다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는 그다지 없을 듯하다.
비어는 배우로서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승부욕 때문에 이 역할에 도전했다고 한다.
그는 연기를 하는 동안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섣불리 말하거나 판단할 수 없단 걸 깨달았다"며 "관객 역시 스텔라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녀의 이기적이고 끔찍한 행위를 경멸하는 감정적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22일 개봉. 121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