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만 안보낼 수도 없고"…K팝 콘서트값에 부모 등골 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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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 실패한 자녀 위해 40만원 암표 사주기도…팬 미팅·앨범·굿즈까지 '밑빠진 독'
업계 "인플레이션 때문 불가피"…전문가 "상업화된 공연·아이돌 문화 과열 식혀야"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친한 친구들이 다 간다니 우리 애만 안 보낼 수도 없고…. 근데 원래 이렇게 비싼가요?"
직장인 윤선영(45)씨는 최근 가수 싸이의 '흠뻑쇼'에 보내달라는 고등학교 1학년 자녀에게 티켓을 구매해주며 짐짓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랐다.
가장 보편적인 스탠딩석은 16만5천원으로, 학생 할인 20%를 적용해도 13만원이 훌쩍 넘었다. 당일 밥 먹는 데 필요한 용돈과 교통비 등을 포함하면 약 20만원의 지출은 불가피하다며 윤씨는 울상지었다.
윤씨는 "몇 년 전 '등골 브레이커'(등골이 휠 정도로 부담이 가는 비싼 상품)로 악명 높던 고가 패딩은 한 번이면 됐지만 콘서트는 1년에도 여러 번, 매년 반복된다"고 말했다.
17일 인터파크 티켓에 게시된 올해 흠뻑쇼 예매자 통계에 따르면 10대는 전체의 5% 안팎이다. 2022년 10대 예매자가 1∼2%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었다.
10∼20대가 주요 고객층인 K팝 아이돌의 콘서트 티켓 판매가도 대체로 일반석 15만원, VIP석은 약 20만원 선으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들 콘서트 가격은 최근 몇 년 새 30∼50% 올라 이제는 해외 팝스타의 내한 공연 가격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다.
올해 4월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그룹 세븐틴의 콘서트 티켓 가격은 13만2천원∼19만8천원이었다. 5월 NCT 드림의 고척스카이돔 콘서트도 15만4천원∼19만8천원이었다. 이들 그룹의 2019년 콘서트 가격은 모두 12만1천원이었다.
K팝의 세계적인 인기로 아이돌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억눌려 있던 페스티벌·콘서트 수요가 폭발하면서 티켓값은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문제는 경제력이 없는 미성년자들의 공연 관람 비용이 오롯이 부모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비단 공연뿐만 아니라 이들 가수의 팬 미팅, 앨범, 굿즈 등 자녀들을 유혹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상술에 빠지면 그 비용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꼴이라고 부모들은 입을 모은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이모(47)씨는 "마냥 못 사게 할 수도 없고, 혹시 아이가 잘못된 방법으로 돈을 구할까 봐 종종 원하는 것을 사주지만 부담된다"며 "물가 상승을 고려해도 옛날보다 너무 많이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매표에 실패해 낙담한 아이에게 40만원을 들여 암표를 사줬다는 다른 학부모는 "아이는 콘서트에서 하는 '덕질'이 학업에 동기부여가 된다고 하지만, 올바른 경제관념을 심어주지는 못하는 것 같아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업계는 무대 설치비용, 대관료, 출연료 등 전반적인 물가가 몇 년 전보다 크게 뛰어 콘서트 가격도 어쩔 수 없이 인상했다는 입장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다중인파 안전관리 비용이 많이 늘어난 점도 한몫한다고 한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가격이 올라도 옛날과 비교해 순수입은 별반 차이가 없다"며 "티켓값에 대한 지적을 고려해 공연 가격을 유지할 경우 어쩔 수 없이 굿즈 판매 등의 수익으로 메꾸게 되는 측면이 있어 팬 지출에는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고 항변했다.
전문가들은 지나치게 팬덤에만 의존하고 상업화된 공연·아이돌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과열 양상을 식히는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는 "사람과 음악이 중심이 아닌 시스템과 자본으로 산업의 중심이 옮겨간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