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응원받아야 할 모두에게…영화 '빅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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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들의 치어리딩 도전기…뻔하지만 우정·위로 메시지 감동적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한국 영화 팬이라면 박범수 감독의 신작 '빅토리'의 포스터를 보고서 강형철 감독이 연출한 '써니'(2011)가 단번에 떠오를 듯하다.
이른바 '레트로 감성'을 폴폴 풍기는 분위기와 10대 여성 청소년들의 우정을 그렸다는 점이 똑 닮았다.
그러나 스토리를 살펴보면 '써니'보다는 다큐멘터리 영화 '땐뽀걸즈'(2017)가 연상된다. 거제에 사는 여고생들의 댄스 스포츠 도전기를 담은 '땐뽀걸즈'는 개봉 당시 여성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지금까지도 최고의 청소년 다큐 중 하나로 꼽힌다.
'빅토리'의 주인공들 역시 거제의 한 상업고등학교에 다닌다. 이들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응원 동아리 '밀레니엄 걸즈'를 결성하고 치어리딩을 배우게 되며 겪는 일이 담겼다.
시간적 배경이 1999년이다 보니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몇몇 장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겹쳐 보이는 작품이 많은 만큼 참신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영화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많은 탓에 전개가 깔끔하지도 않다.
그런데도 관람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은 '빅토리'가 오랜만에 나온 선한 영화여서가 아닐까 싶다.
지난 몇 년간 1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콘텐츠에서는 폭력과 범죄, 혐오, 대상화 등이 트렌드가 되다시피 했다. '빅토리'에선 타인과 자신의 삶을 향한 무조건적인 응원과 우정, 가족애, 꿈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극의 중심을 이끄는 건 클럽에 갔다가 유급당한 2학년 필선(이혜리 분)과 그의 단짝 미나(박세완)다. 백댄서가 되고 싶은 두 사람이 춤 연습실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에서 온 치어리더 출신 전학생 세현(조아람)과 축구 응원부를 만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들이 부원을 선발하고 연습을 이어 나가는 초반부만 해도 영화는 뻔한 청춘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공업 도시 거제의 이면을 들추면서 스토리는 예상을 벗어난 경로로 나아간다. 조선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아버지들과 상고에 재학 중인 딸들의 연대를 중요하게 다루면서다.
무대 경험을 쌓으려 병원과 축제, 시장에서 춤추던 밀레니엄 걸즈가 조선소 파업 현장에 나타나 노동자들과 함께 춤추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밀레니엄 걸즈는 점차 타인을 응원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위로받는 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치유되는 경험을 한다. 이들은 어느새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춤추게 된다.
스크린을 넘어 객석에도 긍정의 기운이 전해지면서 벅찬 감정이 느껴진다. 영화는 이 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응원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청소년 성장물 성격이 강하지만, 코미디 색채도 뚜렷하다. 경남 사투리로 툭툭 뱉는 유머러스한 대사에 무방비로 웃음이 터진다. 그 시절 유행하던 머리 모양이나 옷, 노래도 반갑다.
자로 잰 듯한 치어리딩 안무는 감탄을 자아낸다. 이혜리를 비롯한 배우들은 치어리딩 장면 준비를 위해 3개월간 하루 8∼9시간씩 연습에 매진했다고 한다.
특히 걸스데이 출신인 이혜리는 치어리딩뿐만 아니라 힙합 등 다양한 장르의 춤을 소화하며 현역 아이돌 못지않은 실력을 뽐낸다.
이혜리는 지난 5일 시사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오랜만에 춤을 췄는데 그동안 춰오던 것과 달라 기본기부터 다시 시작했다"며 "치어리딩 안무는 저희(배우들) 사이에서 춤이 아니라 스포츠가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고 전했다.
그는 "필선의 열정과 순수함이 좋았다"며 "소화하기 어려웠던 역할이었지만, 제게 아주 특별한 의미의 캐릭터"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14일 개봉. 120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