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변호사' 삼키고 괴물이 된 트럼프…영화 '어프렌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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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보람기자

    로이 콘 멘토 삼은 젊은 트럼프 그려…美 대선 한 달 전 개봉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로 꼽히는 칸국제영화제의 올해 경쟁 부문 초청작 가운데 가장 눈에 띈 작품은 단연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수습생)였다.

    칸이 총애하는 이란 출신 덴마크 감독 알리 아바시의 신작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가 미국 전 대통령이자 현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의 젊은 시절을 그린 작품이어서다.

    '경계선'(2018), '성스러운 거미'(2022) 등을 통해 소수자와 종교, 사회 문제를 들여다본 아바시 감독이 트럼프를 영웅으로 묘사할 리는 만무할 터. 영화제에서 베일을 벗기 전부터 트럼프와 공화당 진영에서는 일찍이 우려가 나왔다.

    지난 5월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영화가 상영된 이후 리뷰가 쏟아지자 트럼프의 심기는 더 불편해졌다. 트럼프가 전 부인 이바나를 성폭행하고 지방 흡입·탈모 수술을 받는 등 논란이 될 만한 장면이 영화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캠프 측은 '어프렌티스'를 "거짓으로 가득한 쓰레기"라고 비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러나 화제가 된 일부 장면의 이야기를 듣고 이 작품을 트럼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비추기만 한 영화라고 오해해선 안 된다. '어프렌티스'는 야심만만하지만 유약한 부잣집 도련님 트럼프가 '악마의 변호사'로 일컬어지는 로이 콘을 만난 뒤 어떻게 괴물로 변해가는지에 방점을 찍었다.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악랄한 인물로 꼽히는 콘은 변호사 신분임에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협박, 사기, 도청, 폭행, 선동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도 동성애자이면서 미국 정부 내 동성애자를 색출하는 데 앞장서고 이를 권력을 다지는 데 이용하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이런 콘을 1970년대부터 멘토로 삼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콘이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에이즈로 투병하던 말년에는 귀신같이 '손절'을 했다. 콘의 아이코닉함과 카리스마를 향한 흠모는 여전했던 모양인지 제45대 대선 당시 그의 사진을 자기 선거 캠프 사무실에 걸어두기도 했다.

    영화는 스타 변호사이자 정치 브로커인 콘(제러미 스트롱 분)에게 일방적인 구애를 펼치는 젊은 시절의 트럼프(서배스천 스탠)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콘은 트럼프를 "도니 보이"라 부르며 귀여워하고, 그가 얽힌 소송을 맡아 승소를 끌어낸다. 콘의 능력에 완전히 반한 트럼프는 그를 스승으로 삼은 후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닌다.

    콘이 트럼프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건 '승리를 위한 삼계명'이다. 공격 또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든 것을 부인하라, 절대로 패배를 인정하지 마라가 그것이다. 트럼프가 그간 공식 석상에서 뱉은 수많은 막말이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이다.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는 콘의 조언을 바탕으로 사업을 확장해나가고 콘만큼 유명 인사가 된다. '로이 콘 식 애국주의'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비(非)백인, 진보주의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경멸을 바탕으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 된다.

    영화는 트럼프와 콘의 첫 만남에서부터 마지막까지를 무미건조하게 그린다. 약간의 디테일이나 상상력을 가미한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정치 스릴러물에 기대하는 극적인 재미는 거의 없다.

    당시 뉴욕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중간중간 삽입돼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기도 하다. 기이한 에너지가 가득한 연출과 유려한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아바시 감독의 기존 작품과는 다소 결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에 일부 해외 언론은 '어프렌티스'를 두고 이미 잘 알려진 트럼프의 이야기를 재생산한 것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한 탓에 날카로운 비판이나 풍자를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권력이 시스템을 타고 흐르는 방식을 트럼프와 콘이라는 캐릭터를 빌려 훌륭히 표현했다는 우호적인 반응도 나왔다.

    그러나 스탠과 스트롱의 연기력에 대해서는 한입으로 찬사를 보낸다. 스탠은 두 달 만에 7kg을 찌우고 500개가 넘는 트럼프 영상을 분석한 끝에 그의 변천사를 몸소 보여준다. 스트롱 역시 콘의 독특한 목소리를 모사한 것은 물론 인생의 정점에 섰다가 쓸쓸하게 죽어가는 한 인간을 훌륭하게 표현한다.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누리픽쳐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칸영화제 초청 때부터 각종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영화지만, '홈그라운드'인 북미 개봉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트럼프 측이 소송 엄포를 놓은 데다 영화의 제작비 절반을 댄 투자사 '키네마틱스'의 설립자 댄 스나이더가 개봉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나이더는 트럼프를 긍정적으로 그린 전기영화라고 생각해 투자했다가 뒤늦게 내용을 알고서 격노해 내용을 수정할 것을 제작진에게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키네마틱스가 투자금에 프리미엄을 얹어 돈을 돌려받기로 하고 독립 영화사 브라이어클리프 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결정하며 오는 11일 현지 개봉을 앞뒀다. 제47대 대통령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오는 23일 국내 개봉. 122분.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어프렌티스'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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