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씨처럼 상암벌 날아오른 아이유 "힘닿는 데까지 노래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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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여가수 첫 서울월드컵경기장 입성·양일 10만 동원…드론쇼 등 눈길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오늘이 가수 인생에서 단독 콘서트 100회째래요. (공연을) 몇백 번 더해야 가수 인생이 끝날지 모르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하겠습니다. '홀씨' 같은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오랫동안 생존하는 가수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22일 오후 '상암벌' 서울월드컵경기장. 가수 아이유가 솔솔 부는 가을바람을 타고 서울월드컵경기장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자신이 오프닝곡 제목처럼 '홀씨'가 된 듯 공연장을 가득 메운 5만 관객을 내려다보며 '난 기어코 하늘에 필래'라고 노래했다.
빨강, 파랑, 초록, 분홍, 노랑 등 형형색색으로 넘실대는 응원봉의 물결을 뚫고 '걔는 홀씨가 됐다구'하는 떼창이 이내 뒤따랐다.
아이유는 2022년 국내 여성 가수로는 처음으로 잠실주경기장 콘서트를 성사한 데 이어 이번 서울월드컵경기장까지 전석 매진으로 입성하는 기록을 썼다. 21∼22일 양일간 공연장을 찾은 관객은 총 10만명에 이른다.
잠실주경기장에 버금가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의 큰 규모는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번쩍번쩍 빛나는 조명이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응원봉 물결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아이유의 맑고 깨끗한 보컬은 최근 며칠 사이 갑자기 찾아온 가을 날씨와 무척이나 잘 어울렸고, 라이브 밴드와의 조화도 훌륭했다. 그가 '잼잼'과 '오블리비아테'(Obliviate)에서 내지른 고음은 뻥 뚫린 스타디움 하늘을 향해 쩌렁쩌렁 울렸다.
그는 "어제부로 여름이 갑자기 끝났다. 이렇게 길었던 여름이 가고 반가운 가을의 시작에, 이 좋은 날 아이유의 콘서트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여러분이 이렇게 관객으로서 저를 바라봐 주시는 눈빛이 너무 사랑스럽고 좋아서 나도 한 번 관객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팬분들에게 같은 마음을 보내주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이유가 공연 도중 직접 기타를 연주하며 부른 신곡 '바이 썸머'는 그의 말처럼 떠나간 여름에 대한 헌사 같았다.
그는 커다란 공연장을 활용한 다채로운 볼거리와 소통에도 힘을 쏟았다.
'어푸' 무대에서는 여기저기서 고래 모양 풍선이 등장해 공연장이 정겨운 바다로 탈바꿈했고, 드론에 실린 하얀 별이 하늘을 이리저리 휘젓다 바닥에 살포시 앉기도 했다.
그는 특히 히트곡 '셀러브리티'(Celebrity)를 부를 때는 '꽃가마'를 타고 다시 한 번 비상해 스타디움을 가로질러 날아 환호를 자아냈다.
아이유는 이렇게 건너온 보조 무대에서 몇곡을 부른 뒤 "한번은 여러분을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와 봤다. 이렇게 가까우리라고는 리허설하기 전까지는 몰랐다"며 "여기 계신 분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나서 너무 사랑스럽고 예뻐 보인다"고 말했다.
공연이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너의 의미', '밤편지', 너랑 나', '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 감성적인 히트곡이 줄줄이 나왔다. '라스트 판타지'(Last Fantasy) 무대에서는 스타디움 위로 화려한 드론쇼가 펼쳐졌고, '너랑 나'의 클라이맥스에서는 불꽃놀이가 '펑펑펑' 하고 하늘을 수놓았다.
아이유는 이러한 노래들을 촘촘히 엮어내 관객 모두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풀어냈다. 이는 그가 올해 발매한 앨범명이자 공연명인 '더 위닝'(THE WINNING)을 관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고난도로 유명한 '러브 윈스 올'을 부르기에 앞서 "제 입장에서는 관객 한분 한분께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공들여 부르는 노래"라며 "미움이 솟구쳐 오르는 순간에도 사랑이 오기를, 승리하며 행복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공연 전 인근의 주민을 배려해 집마다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돌려 화제를 모았다. 그는 공연 당일에는 관객 전원에게 방석과 망원경도 제공했다.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스타디움 잔디 보호를 위해 사전에 안내받은 그라운드 사용 매뉴얼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공연장 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유관 담당자들과 지속해 협의하고 소통하며 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연이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인근은 5만 관객이 몰려들면서 일찌감치 지하철역 구내부터 인산인해를 이뤘다. 스타디움 바깥에는 대만, 홍콩, 태국 등 세계 각국 팬들이 보낸 기부 쌀 화환이 길게 늘어서 눈길을 끌었다.
전남 여수에서 공연장을 찾은 양모(25)씨는 "아이유에게는 인간적으로 본받고 싶은 면면이 많다. 그의 언행에서는 인류애가 느껴진다"며 "노래를 듣다 보면 그와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제삼자인 우리가 보기에도 그 생각에 공감이 가고, 거기에 담겨 있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본받고 싶어진다"고 말했다.
아이유는 '가을 아침'과 '스트로베리 문'(strawberry moon), '언럭키'(unlucky), '있잖아'를 앙코르로 약 세 시간에 걸친 공연을 마무리했다. '어쩌면 나름대로 더디게 느림보 같은 /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도 몰라' 하는 '언럭키'의 의미심장한 마지막 소절을 부른 뒤 그의 얼굴에는 뿌듯한 듯, 시원섭섭한 듯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번 투어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긴 여름을 보낸 것 같아요. 상암에서 공연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이렇게 여름이 떠나갈 줄은 몰랐네요.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사람 중에 제가 가장 행복한 사람일 거예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