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떠나려는 젊은 어부 통해 겹겹이 쌓인 어촌 문제 다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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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3관왕 '아침바다 갈매기는' 박이웅 감독
"대선배 윤주상 몰아세워 작업…예술의 목적은 해방감 주는 것"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배경이 되는 어촌은 언뜻 평화롭기 그지없다.
어부들은 새벽녘부터 삼삼오오 모여 출항을 준비하고, 아낙네들은 함께 생선을 말리며 수다를 떤다. 이 마을에선 모두가 형님, 아우 하는 가족 같은 사이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기면 갖은 부조리와 폐쇄성이 마을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다.
이곳에서의 삶을 견디지 못한 젊은 어부 용수(박종환 분)는 어획 작업 중 바다에 빠져 죽은 척 위장하려 한다. 수억 원의 사망 보험금을 가지고 아내의 고향인 베트남으로 가 떵떵거리며 사는 게 그의 꿈이다.
"좋은 영화를 만들어 데뷔해야겠다는 의욕과 야심을 가지고 주변에서 이야깃거리를 찾던 때였어요. 한참을 고민하던 어느 날 한 시골 마을을 지나는데 '저런 곳에 왜 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곳을 떠나고 싶은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써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된 작품입니다."
최근 서울 중구에서 만난 박이웅 감독은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출발점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에 다니던 2008년 동해안의 어촌 마을들을 40일 넘게 돌며 사람들의 습속을 관찰해 시나리오 초고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이 영화에는 모두 알만한 이야기와 어딜 가든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면서 "여기에 영국(윤주상)이라는 고집불통 할아버지를 집어넣은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인물은 용수가 아닌 그와 함께 일하는 늙은 선장 영국(윤주상)이다. 영국은 용수가 갑자기 배에서 사라졌다며 신고하고, 수색 작업의 과정과 보험금 지급 방식 등을 알아보며 용수를 돕는다.
영국은 처음엔 용수를 다그치지만, 용수가 사라진 뒤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점차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이기심과 용수의 아내인 결혼이주여성을 향한 차별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박 감독은 "관객이 영국의 행동 변화를 이해하는가에 이 영화의 성공 여부가 달렸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영국이 보기에도 이곳에서의 삶이 옳지 않은 것이죠. 사회 전체가 경직됐고 사람들은 옛것에 갇혀 살고 있어요. 이곳에 겹겹이 쌓인 문제들을 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겉핥기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문제를 폭넓게 다루려 했어요."
윤주상의 뛰어난 연기 덕에 관객은 영국의 마음에 어렵지 않게 동화된다. 영국과 대립하는 용수 어머니 판례 역의 양희경 역시 강단 있으면서도 절절한 모성애를 가진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박 감독은 "연배가 높은 배우들을 몰아세워서 작업했기 때문에 두 분이 영화 완성본을 어떻게 보실지 너무 궁금했다"며 "다행히 너무 좋다고 하셔서 무거운 짐을 벗은 기분"이라고 했다.
그는 윤주상과의 촬영을 떠올리며 "말은 쉽지만 까마득한 후배인 제가 대선배에게 계속 '엔지'(NG)를 외치는 게 긴장됐다"면서도 "하지만 선배님도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있었고, 어떤 장면은 26번을 찍기도 했다"며 웃었다.
박 감독이 여러 난관을 헤치고 1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돼 그의 전작 '불도저에 탄 소녀'(2022)를 완전히 뛰어넘었다는 호평을 들었다. 신인상 격인 뉴 커런츠 상과 관객상, 아시아영화진흥기구(NETPAC)상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박 감독은 "처음 상을 받았을 땐 '와, 좋다!'라고만 생각했는데 곱씹을수록 겸손해진다"며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풀어나간 점이 사람들에게 가닿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은 단순히 웃기고 울리는 게 아니라 해방감을 주는 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서 한참을 생각해보고 그 고통을 경험하고 그것에서 회복한 다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