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찡한 노동영화로 데뷔한 박홍준 감독 "직장 경험 녹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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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해야 할 일' 25일 개봉…장성범·김도영 빼어난 연기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노동 영화라고 하면 대개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붉은 머리띠나 하늘을 향해 내지르는 주먹 같은 걸 떠올리게 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오는 25일 개봉하는 박홍준(38) 감독의 '해야 할 일'은 색다른 노동 영화다. 사측과 투쟁하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인사팀 직원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에서다.
기존 노동 영화가 눈에 보이는 노사 갈등으로 노동 현실을 그렸다면, '해야 할 일'은 노동자이면서도 사측에 설 수밖에 없는 인사팀 직원의 보이지 않는 고뇌를 통해 노동 현실을 절절하게 담아낸다.
"(노사 양쪽 가운데) 어느 한쪽을 나쁜 사람으로 찍어서 혐오하긴 쉽죠. 하지만 그건 사회 현상에 대한 단순한 접근 방식 같아요. 문제를 좀 더 넓게 바라보기도 어려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해야 할 일'에서 노동 현실을 바라본 방식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2016년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는 '해야 할 일'은 조선사 인사팀 막내 직원 준희(장성범 분)의 이야기다.
조선업 위기를 맞아 회사가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준희는 정리해고 계획을 세우는 어려운 임무를 맡게 된다. 인사팀에 갓 전입한 그는 옛 부서 동료들이 정리해고 선상에 오르내리자 내적 갈등을 겪는다.
'해야 할 일'엔 박 감독의 개인적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영화감독이 되기 전 그는 부산의 한 조선사 인사팀에서 일했다.
각본도 직접 쓴 박 감독은 "극으로 만들면서 상상으로 추가한 부분도 많다"며 "개인적 경험이 보편적 의미를 가지게끔 노동 사건 판례와 같은 다양한 자료도 조사해가며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고 말했다.
박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라 그런지 준희가 회사에서 겪는 일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무릎을 칠 만큼 공감할 만한 대사도 많다.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노동자와 인사팀장 규훈(김도영)이 한 치의 양보 없이 벌이는 설전도 현장감을 준다. 노사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장면에선 어느 한쪽에 서지 않으려는 박 감독의 노력이 느껴진다.
준희가 입안한 정리해고가 한창 실행 중일 때 인사팀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는 장면은 관객의 눈물샘을 건드린다. 이 짤막한 장면 하나로 정리해고의 비인간성을 강렬하게 드러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이 또한 박 감독의 개인적 체험이 반영된 장면이다. 그는 "당시 회사에 다니면서 영화감독이 되려고 준비하던 무렵인데, (그 장면과 비슷한 일을 겪고) 나중에 꼭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전화 속 목소리의 주인공은 배우 김향기다. 박 감독이 제작사 명필름랩을 통해 부탁하자 김향기는 흔쾌히 특별출연에 나서줬다고 한다.
준희 역의 장성범과 규훈 역의 김도영은 일선에서 정리해고를 실행해야만 하는 인사팀 직원의 내적 갈등을 빼어난 연기로 그려낸다. 이 영화로 장성범은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배우상을, 김도영은 제25회 부산독립영화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
박 감독은 조선사를 5년 정도 다니다가 그만두고 영화의 길에 들어섰다.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주말이면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열리는 강좌에 참석해 영화를 공부하면서 단편 '이삿날'(2017)과 '만끽연가'(2018)를 연출했고, 이번에 첫 장편을 내놨다.
박 감독은 "노동 영화로 데뷔했지만, 노동 문제만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사회 문제 전반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어떤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촉매 역할은 할 수 있다고 본다"며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재밌어야 하는 건 물론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