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다룬 '샤먼' 제작진 "연출 전혀 없는 '리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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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 공동 인터뷰…"'무속은 왜 사라지지 않을까' 의문에서 출발"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제가 PD들한테 물어봤어요. 너희 혹시 연출한 게 있냐고, '1'이라도 있으면 상품적 가치가 없다고요. PD들이 '모든 걸 걸고 연출은 하나도 없다'고 대답해서 사실 저도 놀랐어요. 제작진 내부에서도 연출된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죠."(허진 CP)
이달 11일 첫선을 보인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샤먼: 귀신전'(이하 '샤먼')은 무당과 신점, 귀신 등 샤머니즘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프로그램은 귀신 현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일정한 의식을 거쳐 현상을 해결하는 무속인들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귀신 현상이나 무속 의식 등 극적인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데다 일반인 출연자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연출적인 특징 때문에 일부 시청자는 평점 사이트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재연 화면 같다",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샤먼' 제작진은 작품 공개를 기념해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연출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허진 CP와 오정요 작가, 박민혁·이민수 PD를 만나 작품 제작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 PD는 "초반부 (귀신 현상을 겪은) 사례자의 집에 무당이 방문하는 장면에 특히 연출된 것이 아니냐는 반응이 많은 것 같은데, 제가 촬영 현장에 있었다"며 "연출이 전혀 가미되지 않은 완전히 리얼한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샤먼'은 약 2년 동안 귀신 현상을 겪은 7명의 제보자와 무속인 6명, 전문가 10여명을 만나 귀신과 무속이라는 주제를 다각도로 탐구했다.
제작진은 50명여명의 제보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이들이 진심으로 귀신 현상을 겪었다고 믿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진정성을 검증하기 위해 제작진이 제보자들에게 필수적으로 건넨 질문은 "혹시 정신병원에 가 보셨나요?"였다.
이 PD는 "제보자 중 절반 정도는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았고 자기 생각에 귀신이 들린 게 확실하다고만 얘기했는데, 이런 분들은 이미 무속 세계에 믿음이 생긴 분들이라 배제했다"며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분들이 어쩔 수 없이 무속에 기대게 되는 모습을 취재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제보자 가운데 방송에 출연할 사람을 선별하는 조건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제작진은 각 출연자가 겪은 귀신 현상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표현해 시청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이들은 출연할 수 없었다.
오 작가는 "본인이 겪은 현상을 남에게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표현력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점이었다"며 "인지 능력에 문제가 없는 사람, 자신이 겪은 일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했다"고 설명했다.
출연자뿐 아니라 다큐멘터리 내용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프리젠터'로 출연할 배우를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민감한 소재를 다룬 탓에 섭외를 제안받은 여러 배우가 고사하고 결국 유지태·옥자연이 출연에 응했다.
이렇게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 가면서 '샤먼'을 기획하고 제작한 이유가 뭔지 궁금해졌다.
박 PD는 "저는 천주교 신자인데, 주변 신자들을 보면 결혼할 때 좋은 날짜를 받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며 "믿지 않는다면서도 점을 보고, 점을 보고 온 지인에게 '얼마나 용하냐'고 묻고, 이런 양면적인 모습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 PD는 "'왜'에서 시작했다"며 "무속은 과거 많은 억압을 받고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여전히 무속이 작동하는 이유를 파헤치면 재미있는 다큐멘터리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특히 '샤먼'과 같은 민감한 소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이 자리를 잡은 덕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PD는 "OTT라는 플랫폼이 활성화하기 전에는 이만큼 깊게 이 주제를 다룰 수 없었다"고 말했고, 박 PD 역시 "애초부터 '샤먼'은 OTT용으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박 PD는 또 "만약 TV 방송 콘텐츠로 '샤먼'을 만들었다면 기계적인 중립을 지켜야 하고 자막으로 계속 '사례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또는 '무속인 개인의 의견입니다'라고 시청자에게 알려야 했을 것"이라며 "소비자가 선택해서 시청하는 OTT라서 가능한 기획이었다"고 덧붙였다.
많은 어려움을 딛고 제작한 '샤먼'은 공개 첫 주 티빙 유료가입 기여지수 1위를 기록하며 예상 이상의 성적을 내고 있다. 8부작인 '샤먼'은 1∼4회가 공개됐고 이달 18일과 25일에 각각 2회씩 추가로 공개될 예정이다.
'샤먼'은 귀신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출연자들의 사례와 무속인들의 의식을 보여주고 판단은 시청자에게 맡긴다. '프리젠터'로 출연한 유지태와 옥자연도 제작진이 마련한 "귀신을 믿나요?" 등의 질문에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 획일화된 답을 내리진 않았다.
박 PD는 "'샤먼'에 대한 온라인 커뮤니티 글이나 댓글을 보면 귀신의 존재나 무속의 역할에 대해서 여러 논쟁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다큐를 만든 사람으로서는 그런 모습이 제일 보기 좋다"며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무속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켜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다큐에 출연한 여러 사람에게 건넸던 '귀신이 있다고 믿나요?'라는 질문에 제작진 본인들은 어떻게 대답할까. 각자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저는 처음에 귀신에 대한 믿음이 0이었어요. 그런데 '샤먼'을 촬영하면서 1 정도가 생겼어요. 100을 완전한 믿음이라고 했을 때 1정도요. 그리고 귀신이 있는지는 별개로 무속의 '기능'에 대해서는 백 퍼센트 믿게 됐죠. 그리고 그 기능이 무속을 수천 년간 이어지게 한 원동력인 것 같아요."(이 PD)
"오랫동안 귀신을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잊고 살아왔는데,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혹시 귀신이 있나? 어쩌면 있을 수도 있겠다, 하고요."(허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