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 "우주에서 이번엔 지구로…하늘은 못돼도 바다를 지향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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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20주년에 7집 발표…"작업 원동력은 호기심, 한국어 가사에 자부심 느껴"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사건의 지평선'이) 1등을 해서 물론 신났지만, 내가 해야 할 일로 어서 다시 돌아가고 싶었어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가수 윤하는 6집 리패키지 타이틀곡 '사건의 지평선'이 큰 성공을 거둔 뒤 호주로 여행을 떠났다. 어느 해안서 처음 만난 이국적인 맹그로브 나무는 소금기 가득 먹은 바닷물의 드나듦을 묵묵히 견디며 많은 물고기의 터전이 돼 주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악취가 난다며 가까이하지 말라던 바로 그 맹그로브 나무. 예쁘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만 묵묵히 자신을 다른 생명에게 내주는 모습에 윤하의 머릿속 전구가 '반짝'하고 켜졌다. 그의 7집 작업은 이렇게 시작됐다.
윤하는 지난 2일 정규 7집 '그로우스 띠어리'(GROWTH THEORY) 발매 기념 공동인터뷰에서 "맹그로브에 인격을 부여하면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보니 내가 느낀 부담 등은 작은 것들이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사건의 지평선'이) 1위에 안착하고 오래 있는 걸 보고 이건 내 노력으로 얻어진 성과가 아니라 운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거기서 오는 부채 의식과 부담감이 컸다. 내 몸값을 올릴 게 아니라 빨리 다음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
윤하는 지난 2004년 일본에서 먼저 데뷔해 '혜성', '비밀번호 486', '우리 헤어졌어요'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특히 2022년 '사건의 지평선'이 차트 역주행을 펼쳐내면서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번 7집은 윤하의 '띠어리'(이론)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이다. 윤하는 신보에서 시선을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 지구의 바다로 옮겨갔다. 소녀, 개복치, 그리고 작고 낡은 요트가 함께하는 여정이라는 촘촘한 스토리텔링을 그려냈다.
"주인공 소녀가 있어요. 지구로 충돌하러 오는 혜성이 이 소녀와 교신하고서 블랙홀로 들어가 희생하는 내용이죠. 이를 보고 오랫동안 황당해하고 있던 소녀가 현실을 자각하며 시작하는 스토리에요. 언제까지나 (혜성을) 그리워만 할 수는 없으니 정신을 차리고 어느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윤하는 "소녀는 나를 투영한 것일 수도 있고, 듣는 분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며 "소녀가 맹그로브 나무를 보고 용기를 얻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새 앨범에는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를 비롯해 왈츠를 연상시키는 3박자가 인상적인 '맹그로브', 강렬한 록 사운드의 '죽음의 나선', 용기 있는 도전을 응원하는 '은화' 등 10곡이 담겼다.
윤하는 "체조경기장(KSPO돔)에 입성했으니 못해도 한두 번은 더 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로 사이즈가 큰 작업을 해 보고 싶었다"며 "이번에는 완전한 록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사운드가 화려하고 이것이 체감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6집은 '인셉션'처럼 무의식이나 꿈에 들어와 듣는 느낌이 나는데, 이번에는 정말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판타지인지 현실인지 구별이 안 되는 느낌을 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1번 트랙 '맹그로브'는 마치 대자연을 조명한 고화질 다큐멘터리처럼 생동감이 넘쳐난다. 4번 트랙 '은화'에서는 아코디언, 휘슬, 장구, 꽹과리 등 동·서양 악기들의 신명 나는 연주 한마당이 펼쳐진다.
타이틀곡 '태양물고기'는 타인의 평가나 잣대가 아닌 스스로 치열하게 옳다고 여기는 길을 가면 된다는 메시지가 담긴 노래다. 곡명 개복치의 영어명 '선피시'(Sunfish)에서 따 왔다.
윤하는 "이 물고기가 생각보다 대단한 친구다. 수면 위부터 심해 800m까지 왔다 갔다 하고, 수명도 20년이나 된다"며 "성체가 20년을 산다니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은) 나와 운명적으로 결착된 느낌도 들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내 이상은 하늘같이 드넓은 대인배, 무한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아 괴로운 순간도 많다"며 "하늘을 지향하지는 못해도 하늘을 담은 바다를 지향할 수는 있지 않나. '바다의 태양'(Sunfish)은 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이 곡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옛 소속사를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과정, 심혈을 다해 만든 앨범에 상업적 보상이 뒤따르지 않는 경험 등을 겪으며 한때 슬럼프도 겪었다.
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지금, 그에게 있어 가수란 "툭 치면 노래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단다.
윤하는 "그냥 '방망이 깎는 장인'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곡을 만들고 노래할 것"이라며 "어차피 쉴 수는 없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라'는데 노만 젓다가 전완근이 잘못될 수도 있다. 장기 레이스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노래하겠다"고 말하며 웃었다.
윤하는 앨범 전곡의 작사와 작곡에 참여했다. 그가 외국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쓴 노랫말에는 한국어 특유의 말맛이 싱그럽게 '통통' 튄다.
그는 "나는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외국 사람은 알 수 없는 우리말과 한글만의 자부심을 가지고 작업하려 했다"고 말했다. 또 "내 창작의 원동력은 호기심"이라고 했고, 협업하고 싶은 K팝 스타로는 에스파와 그 멤버 카리나를 꼽았다.
'태양물고기'는 발매 직후 멜론 '톱 100' 차트 100위 이내에 진입하는 등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자연스레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할 차기작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수면에서 심해까지 헤집는 개복치의 모습이 음악적 욕심 많은 저와 닮은 것 같기도 합니다. 우주(6집)에서 바다와 지구(7집)로 왔으니 다음에는 집이나 군락 같은 더 작은 공간으로 이동하며 좋겠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