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부모란 이유로 고개 숙여야 하는 현실…영화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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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 아이 키우는 기자 이야기…김재화 빼어난 연기 돋보여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몇 년 전 서울의 한 특수학교 설립에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장애인 학부모들이 지지를 호소하며 무릎을 꿇은 사건은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이 겪어야 하는 고통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각인됐다.
이상철 감독의 신작 '그녀에게'는 아직도 장애인 학부모가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려야만 하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 한국 사회의 현주소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그녀에게'는 일벌레인 신문사 정치부 기자 상연(김재화 분)이 진명(성도현)과 결혼해 낳은 아들 지우(빈주원)가 지적장애 판정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밖에 몰랐던 상연이지만, 이제는 지우를 돌보는 일이 삶의 전부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장애인 아들을 한국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키워내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국회 출입 기자 시절엔 실세 의원과도 '맞짱'을 떴던 상연이지만, 학교에서 말썽을 피운 지우에게 싸늘한 표정을 짓는 같은 반 학부모 앞에선 연신 "죄송하다"며 굽신거린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을 원작으로 한 '그녀에게'는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가 겪을 법한 사실적인 에피소드가 이어지면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키즈카페에서 지우가 다가오는 것을 본 아이들이 더러운 것을 피하기라도 하듯 다른 데로 가버리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상연의 얼굴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묻어난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값싼 도덕적 설교 같은 데 빠지지는 않는다. 장애인과 그 가족의 현실을 실감 나게 그리는 데 주력하면서 관객이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한다.
관객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란 한국 출신의 아티스트가 세계 무대에서 얼마나 주목받느냐가 아니라 지우와 같은 장애인 한 명이 어떤 대우를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 한국 사회의 현실에 눈을 뜨고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상연 역을 맡은 김재화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그는 장애인 아들을 바라보는 상연의 복잡한 마음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지우를 연기한 빈주원은 오디션으로 뽑힌 아역배우다. 촬영 당시 일곱 살이었던 그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만큼 안정적으로 장애인 연기를 소화해낸다.
이 감독은 장애인에 관한 시나리오 작업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류 작가의 책을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류 작가는 '그녀에게'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지난해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9월 11일 개봉. 105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