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미스 나이지리아와 남아공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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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 없이 높은 실업률에 제노포비아 되살아나나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스 유니버스 나이지리아 대회에서 왕관을 쓴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치딤마 아데치나(23).
미스 남아공에 도전했다가 국적 논란 끝에 중도 하차한 뒤 미스 나이지리아 대회 주최 측의 초대를 받은 그가 뒤늦게 결선에 참여해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2001년 요하네스버그 인근 타운십(흑인 집단거주지)인 소웨토에서 나고 자란 아데치나는 지난 7월 미스 남아공 결선 진출자로 선발된 이후 국적 논란에 휩싸였다.
각각 나이지리아와 모잠비크 출신인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그의 출생 당시 남아공 시민권이나 영주권이 없었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남아공은 1995년 이후 자국 출생자에게는 부모 중 한 명이 남아공인이거나 영주권자이면 시민권을 준다.
그는 한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아버지는 나이지리아인이었지만 어머니가 모잠비크계 남아공인이었다고 해명했고, 주최 측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남아공 내무부가 어머니의 국적 취득 과정에서 사기와 신분 도용 혐의가 있다고 밝히면서 그는 결국 대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8일 스스로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정책) 종식 이후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공존해 '무지개 나라'라고 불리는 남아공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많은 사람이 그의 출전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소셜미디어에서 아데치나는 악랄한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 공격에 그대로 노출됐다.
극우 성향인 애국동맹(PA)이 연정에 참여하며 내각에 합류한 반이민 성향의 게이튼 매켄지 스포츠예술문화부 장관은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아데치나 때문에 기회를 빼앗긴 남아공의 아름다운 젊은 여성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남아공 국민이라면 내가 가장 먼저 사과하겠다"고 덧붙였다.
남아공 노동조합연맹(SAFTU)은 매켄지 장관의 이런 발언이 "외국인 혐오 괴롭힘"이라고 비난했다.
급진 좌파 성향의 경제자유전사(EFF)는 아데치나에 대한 공격이 "우리 사회를 계속 괴롭히는 분열적 이데올로기가 팽배했던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재를 반영한다"고 지적하며 아데치나에 대한 연대를 표명했다.
남아공은 과거에도 아프리카 이민자를 겨냥한 제노포비아 폭력 사태를 종종 겪었다.
5년 전인 2019년 남아공에서 외국인 혐오 범죄가 증가하면서 최소 1천500명의 외국인이 삶의 터전을 떠난 것으로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집계했다.
당시 나이지리아 정부는 남아공에서 자국민 수백명을 철수시키기 위해 전세기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2015년과 2008년에도 제노포비아에 기인한 폭력 사태로 아프리카 이민자 수십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다쳤다.
부진한 경제 성장에도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산업화한 남아공에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이민자가 수백만 명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 남아공의 높은 실업률은 제노포비아를 초래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2분기 33.5%로 202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남아공의 실업률은 2000년대 이후 줄곧 20∼40%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해 왔다.
이렇게 변함 없이 높은 실업률에 남아공 국민들이 지쳐가면서 현지 일각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나이지리아 대회 우승 후 아데치나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우리를 분열시키는 장벽을 허물자"라는 얘기는 이런 남아공을 향한 일성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