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eople] 배우 황정민 "그냥 '여자 황정민'으로 쭉 가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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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P.2, 무빙 등 흥행 K드라마 '신스틸러' 맹활약
폭넓은 연기스펙트럼…"카메라 앞에선 아직도 경직"
'짧고 굵은' 호연…"간접경험 한계 연습량으로 메워"
(서울=연합뉴스) 김지선 기자 = "한때 예명을 쓰든지 아예 개명할까 고민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땐 중성적인 느낌인 정민 대신 예쁜 이름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배우 황정민(55)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은 내 이름이 좋아서 그냥 '여자 황정민'으로 쭉 갈 생각"이라며 트레이드 마크인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동명이인이자 같은 학교 한 학번 선배인 배우 황정민(54)과는 '오가다 인사만 나눈 사이'라는 그는 "그분이 워낙 스타인지라 '여자 황정민'이라는 수식어도 감사하다"고 겸손해했다.
하지만 대학로에선 '배우 황정민'이라고 말하면 성별을 물을 만큼 '여자 황정민'의 인지도가 '남자 황정민' 못지않다.
극단 '목화'의 간판 배우로 활동하며 1998년 '남자충동'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신인상과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았다. 두 해 뒤에는 '춘풍의 처'에서의 열연으로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여자연기상까지 꿰찼다.
스크린 데뷔작 격인 '지구를 지켜라!'(2003) 속 캐릭터는 장준환 감독이 처음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서커스단 줄타기 곡예사 '순이'는 그에게 2004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독립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줬다.
최근 'D.P.2'의 관심병사 김루리 엄마, '무빙'의 정육점 사장을 비롯해 화제의 K드라마에서 '신스틸러'로 활약하며 연극계를 넘어 '전천후 조연'으로 발돋움했다.
순진하고 내성적인 성격부터 섬뜩하고 그로테스크한 역할까지 이질감 없이 소화하는 황정민이지만 여전히 연기, 특히 영화·드라마 등 매체 연기는 어렵기만 하다는 고백이다.
처음엔 컷별로 나눠 찍는 방식에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고, 아직도 카메라 앞에 서면 불편하고 경직된다고 한다.
서울 토박이인 데다 미혼인지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되는 이치를 간접경험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것 역시 일종의 '핸디캡'으로 꼽은 그는 "'무빙'의 경우 배역이 가진 정서를 지키면서 경상도 사투리의 뉘앙스를 살리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럴 때마다 유튜브 자료 영상을 뒤지는 등 끊임없이 탐구하며, 그 인물이 되려고 애쓰는 것이 황정민만의 노하우다.
"극 중 분량이 적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보고 촬영에 들어갔다"는 그는 영화 '하녀'(2010)에서 친구 은이(전도연)와 스쿠터를 모는 장면을 위해 난생처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을 정도다.
'짧고 굵은' 호연 뒤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연습량이 숨어있는 셈이다.
서울국악예고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황정민은 배우의 꿈을 품고 4수 끝에 서울예대에 진학했다. 학창 시절 교회 성극을 하던 중 느낀 카타르시스는 그를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성격유형검사(MBTI) 결과가 중재자(INFP)일 만큼 평소 내향적인 편이지만, 일단 무대에만 오르면 특유의 말맛 나는 연기를 신명 나게 펼친다는 점에서 '천상 배우'라는 평가다.
황정민은 독립영화 '공작새', KBS 2TV 드라마 '개소리'에 이어 내년에는 연극 '꽃의 비밀'로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 1993년 데뷔한 이래 30년 넘게 외길 인생을 걸어온 그의 소망은 '연기를 잘한 배우'로 기억되는 것. 인생의 관록이 쌓인 노배우가 '그냥 툭 놓고 하는' 경지에 이를 때까지 황정민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