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현 "1인 2역처럼 연기…저를 못 알아봤다는 반응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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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조명가게'서 섬뜩하고 애절한 연기…"장면마다 감정의 퍼센트까지 계산"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설현인지 못 알아봤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듣기 좋았어요. 배우보다 배역으로 보였다는 뜻이잖아요."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설현이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는 "저는 아직 제 연기를 보면 부족한 점만 보이지만, 그래도 이번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게 돼서 보람차다"고 말했다.
설현은 디즈니+ 새 시리즈 '조명가게'에서 막차도 끊긴 버스 정류장에 홀로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수상한 여자 지영을 연기했다.
그는 "반전을 숨긴 캐릭터기 때문에 극 초반부와 후반부를 나눠서 1인 2역을 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4부까지는 연쇄살인마처럼 보이도록 연기하라는 게 감독님의 지시였어요. 장면마다 몇 퍼센트의 감정을 드러내도 되는지 계산해가며 촬영했죠."
'조명가게' 1화 첫 장면부터 등장하는 지영은 섬뜩하고, 서늘한 인상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버스 정류장에 넋을 놓고 앉아있던 지영은 한 남자가 말을 걸자, 같이 가도 되겠냐며 그의 집까지 따라 들어간다.
카메라는 손톱이 손바닥에 달린 지영의 기이한 손을 비추고, 이어서 그가 핏방울이 뚝뚝 흐르는 거대한 캐리어를 끌고 남자의 집에서 걸어 나오는 장면을 담아낸다.
설현은 "영하의 날씨에 홀딱 젖은 채로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어야 하는 촬영이 많았는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서 추운 건 사실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다"고 되짚었다.
드라마는 중후반부에 달해서야 지영의 사연을 풀어낸다. 사랑하는 남자친구 현민(엄태구 분)을 사고로 잃고, 죄책감에 따라 죽은 지영은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 서 있는 현민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의 곁을 맴돈다.
설현은 "연인과 함께하고 싶지만 그래도 살려야 하는 마음, 막상 살려놓고 나니 너무 보고 싶어서 그를 다시 따라가게 되는 마음 등 지영이의 복잡한 심경이 하나하나 다 이해가 됐다"며 "그 마음을 연기하는 게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민이가 지영을 기억해내지 못하는 명확한 이유가 드라마에 나오지는 않아요. 제가 지영으로서 생각했을 때는, 둘의 사랑의 무게가 같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영이가 현민을 훨씬 더 사랑했죠."
2012년 걸그룹 AOA로 데뷔한 설현은 같은 해 KBS 2TV 드라마 '내 딸 서영이'로 연기에 도전했다. 이후에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드라마 '나의 나라', '낮과 밤' 등에서 안정적인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을 받았지만, 설현은 "저는 저에 대한 확신이 없는 배우"라고 털어놨다.
그는 "감독님이 항상 촬영을 마치면 '너는 어때?'라고 물어보셨는데, 저는 자신이 없다 보니 늘 '잘 모르겠다'고 답했었다"며 "촬영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차에서 눈을 질끈 감고 그날 했던 촬영을 후회했던 날도 많았다"고 말했다.
"'조명가게'로 좋은 평가를 들었지만, 아직도 제 연기에 대한 확신은 없는 것 같아요. 계속 아쉬웠던 것만 생각나고, 더 잘하고 싶어요. 근데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내가 못 하고 있다는 마음이 있어야 발전하는 거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