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혁 "탄핵 찬반 모습, '오징어게임' 장면과 소름돋게 닮아"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오징어 게임' 시즌2에서 성기훈(이정재 분)으로 '돈키호테' 같은 인물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림도 없지만 풍차를 부수려고 달려드는 '돈키호테'의 모습과 기훈의 반란이 비슷한 느낌인 거죠. 그러니 사실 답답해 보였을 겁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 공개 후 주인공 성기훈은 시청자들로부터 "바보 같다", "답답하다"는 지적을 한몸에 받았다.

그는 목숨을 건 끝에 가까스로 게임 관계자와 대화할 수 있게 됐지만 게임을 멈추라는 헛된 요청만 하고, 게임장에서는 고작 총 몇 자루를 빼앗아 실패할 것이 뻔한 반란에 나선다.

시즌1에서는 평범한 소시민이자 선량함을 간직한 인물이었지만, 시즌2에서는 진중해지고 강렬한 목표 의식을 가진 인물로 180도 바뀌었다.

'오징어 게임' 시리즈를 만든 황동혁 감독은 지난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취재진을 만나 성기훈의 성격 변화는 의도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 사람을 믿고,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결심한 사람이 세상에 부딪히면서 스스로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훈은 게임을 멈추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하겠다는 목표로 다시 참가했지만, 다수결 투표에서 거듭 밀리자 결국에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부를 희생하자는 결정을 내린다.

황 감독은 "기훈은 점점 게임을 끝내겠다는 목표에 사로잡혀서 원래 자기가 가진 신념과 가치를 조금씩 잃어간다"며 "결국 '작은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이 게임을 여기서 끝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타락하고 망가진다"고 설명했다.

이는 참가자로 가장해 기훈 옆에서 함께 게임을 한 프론트맨 황인호(이병헌)의 목표이기도 했다며 변화하는 기훈의 모습이 시즌3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날은 시즌2 공개 후 황 감독이 처음으로 언론과 만난 자리였다.

글로벌 기대작이었던 시즌2의 뚜껑을 열자 국내외에서 호평과 혹평이 엇갈렸다. 무엇보다도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영화·드라마 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에서 비평가들이 시즌2에 매긴 점수는 83%(100% 만점)로 시즌1의 95% 대비 하락했다.

황 감독은 "시즌1과 달리 '서프라이즈 팩터'(깜짝 요소)가 사라졌고, 시즌2와 시즌3이 한 호흡의 이야기인데 변곡점에 끝나서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이라며 "그래도 로튼토마토가 80%대라면 10명 중 8명이 볼만 하다고 한 것인데 이 정도면 받을만한 평가를 받은 것 아닐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더 응원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며 웃음지었다.

평가와 무관하게 인기와 화제성 면에서는 압도적인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시즌2는 전 세계 93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콘텐츠에 올랐고, 넷플릭스에서 역대 공개된 TV 시리즈 가운데 공개 첫 주 기준 1위를 기록했다.

전작에 나오지 않던 새로운 캐릭터와 게임들이 등장한다는 점이 시즌2만의 재미로 꼽힌다.

황 감독은 특전사 출신 트랜스젠더 현주(박성훈)가 고(故)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미국의 트랜스젠더 군인 사례들이 모티브가 됐다면서 "현주란 인물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현주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성소수자를 보는 관점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새로우면서도 재미있는 게임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시즌1을 만들 때 탈락한 게임 리스트를 다시 뒤져봤다"며 "공기놀이, 제기차기, 비석치기 등이 하나만 놓고 보면 너무 단순한 게임 같아 5인 6각 5종 경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특히 동요 '둥글게 둥글게'와 함께 진행되는 짝짓기 게임에 대해서는 "단순하면서도 되게 잔인한 게임"이라며 "껴안을 때는 유대감을 주지만, 누군가를 떼어내 강한 아이들끼리 그룹을 지으면 박탈감과 패배감을 주는 묘한 놀이라 꼭 세 번째 게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황 감독은 타노스를 연기한 그룹 빅뱅 출신 탑(본명 최승현)의 캐스팅 논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오디션을 오래 진행하고도 타노스에 맞는 배우를 찾지 못했고, 누군가 가져온 리스트에 이름이 있어 제작사를 통해 연락했다"며 "대마초로 모든 것을 그만둔 친구가 자신과 너무 닮은 역할을 맡는 것을 오래 고민한 것 같다. 이후 오디션 겸 대본 리딩을 하면서 가능성을 좀 봤다"고 캐스팅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여론을 보고 최승현이 이렇게까지 용서받지 못했나 싶어 화들짝 놀라기는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만화적인 캐릭터인 타노스를 표현한 그의 연기에 만족한다며 "착잡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여러 캐스팅 논란을) 지켜봤는데, 결국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시즌2에서는 유독 투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게임을 계속 이어 나갈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참가자들이 속행(O)과 중단(X)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황 감독은 "대의제 민주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생각한다"며 "과연 투표를 통해 다수결로 한 방에 모든 것을 결정하는 이 시스템이 맞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지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도 대통령 관저 등지에선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서 모이고, 서로 싸울까 봐 경찰이 선까지 그었다고 한다"며 "(시즌2) 게임장 숙소 안에 선을 긋고 싸우는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았다"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예상 못 한 일은 예고편 영상이 공개될 때도 일어났다.

프론트맨 황인호가 참가자로 가장해 등장한다는 사실은 시즌2·3편에 나오는 큰 반전 요소였지만, 공식 예고편 속 참가자 단체 장면에서 스쳐 가듯 인호의 얼굴이 잡히면서 미리 드러나게 됐다.

황 감독은 "(황인호의 얼굴을) 찾아낼 것이라고는 제작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충격을 많이 받았다"며 "그 뒤로 나간 동영상은 모두 프레임 하나하나 돌려보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 공개 예정인 시즌3 내용을 슬쩍 귀띔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시즌3에서도 경찰 황준호(위하준)는 여전히 성기훈을 돕기 위해 게임장이 있는 섬을 찾아다녀요. 기훈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과연 구원군이 도착할 것인지 긴장감을 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모든 시즌을 통틀어서 시즌3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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