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의 밤 실종된 음악가…애니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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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보사노바 황금시대 이끈 테노리우 주니오르 추적기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브라질의 피아니스트 테노리우 주니오르는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에게도 낯선 이름이다.
1960∼70년대 보사노바 황금시대를 이끈 아티스트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연주자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테노리우가 아르헨티나 투어 중이던 1976년 3월 18일 실종되면서 이젠 동시대에 활약한 음악가들이나 소수의 팬만이 그와 그의 음악을 기억할 뿐이다. 테노리우는 어쩌다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걸까.
애니메이션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는 이 같은 호기심에서 출발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페르난도 트루에바 감독은 2004년 우연히 테노리우의 앨범을 들은 뒤 그의 음악에 매료되고, 그가 30년 넘게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알고서 궁금증이 생긴다.
그는 2년에 걸쳐 테노리우를 알았던 150여 명을 인터뷰했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생각을 바꿔 애니메이션 극영화로 제작했다.
쿠바 재즈 뮤지션의 로드 무비를 그린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2012)를 공동 연출한 하비에르 마리스칼 감독과 다시 한번 손을 잡았다.
영화는 뉴요커지에 칼럼을 기고하는 음악 기자 제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우연히 테노리우의 음악에 끌린 제프는 그가 과거 갑자기 사라졌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찾아 나선다.
제프는 트루에바 감독의 페르소나로, 테노리우와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람을 만나면서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추적한다. 트루에바 감독이 실제로 인터뷰한 인물 영상에 애니메이션을 덧씌워 리얼리티를 살렸다.
자취를 감춘 전설적인 음악가를 찾는다는 내용 때문에 다큐멘터리 영화 '서칭 포 슈가맨'과 비슷한 감동적인 스토리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1950∼70년대 중남미 국가에 번진 군부 쿠데타와 독재, 백색 테러를 고통스러운 얼굴로 떠올리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잇따라 나오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테노리우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 6개국이 합동해 벌인 콘도르 작전의 희생양이었다. 반공이라는 명분 아래 반체제 인사는 물론이고 민간인까지 무차별적으로 탄압한 이 작전으로 테노리우는 시신도 발견되지 못하고 거의 50년간 실종자로 남았다.
다큐멘터리나 다름없는 무거운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애니메이션이라는 형식 덕에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기 어렵다.
그래픽 노블의 한 페이지 같은 작화법, 남미의 분위기를 그대로 녹인 듯한 강렬한 원색 계열의 색채가 눈길을 잡아끈다.
열정적인 남미 음악의 향연은 귀를 호강하게 해준다. 미국의 재즈 가수 엘라 피츠제럴드가 브라질에서 공연을 마치자마자 하이힐을 벗어 손에 든 채 클럽으로 달려가 무명 연주자들의 보사노바 공연에 합류하는 장면도 재현됐다. 인터뷰 참가자가 즉흥적으로 들려주는 연주도 즐거움을 안긴다.
29일 개봉. 104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