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감독 한지원 "2050년 서울은 따뜻한 풍경일 거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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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첫 한국 애니 '이 별에 필요한' 연출…"손맛 느껴지는 아날로그 선호"
"韓 애니, 개성·다양성 갖추는 단계…따뜻한 격려 필요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넷플릭스의 첫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이 별에 필요한' 속 2050년 서울의 풍경은 낯선 듯하면서도 익숙하다.
홀로그램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무인 택시, 드론 택배 등 최신 기술이 일상화됐지만 세운상가, 서울로7017, 롯데월드타워, 을지로 골목 등 지금 서울 시민이 즐겨 찾는 곳이 지닌 고유의 매력은 그대로 살렸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대다수 영화·드라마가 우울한 분위기를 띠는 것과 달리 따뜻하면서도 푸르른 이미지를 내세운 점도 시청자를 미소 짓게 한다. 봉준호 감독은 "우주와 일상을 감싸 안는 섬세한 시각적 완성도를 갖췄다"며 이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서울은 제가 굉장히 사랑하는 도시이고, 이 작품이 청년에 관한 이야기여서 암울한 세계관 안에서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미래의 모습은 오히려 따뜻한 풍경이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죠. 우리의 애정이 서린 곳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 같았거든요."
2일 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한지원 감독은 이 작품을 구상하는 동안 '무엇이 바뀔까'라는 질문보다 '무엇이 남아 있을까'에 중점을 두고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 서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면 지금도 그대로인 곳이 많지 않으냐"며 "주인공들이 실제로 우리와 같은 태양 아래, 같은 행성 위에 있는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이 작품은 화성 탐사를 꿈꾸는 우주인 난영(김태리 목소리 연기)과 음악인의 길을 접고 악기 수리점에서 일하는 제이(홍경)가 만나 사랑에 빠지며 겪는 일을 그린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는 서울을, 그다음부터는 화성과 우주를 배경으로 한다.
한 감독은 "평소 우주라는 소재를 좋아했다"며 "어른들의 감정선과 성인 취향의 그림체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장르의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독특한 점은 '이 별에 필요한'의 소재나 배경은 미래지향적이지만,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지금 우리 모습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난영과 제이가 바닥에 떨어진 턴테이블을 줍다 손이 부딪히며 얼굴을 붉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입을 맞추는 광경은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다.
3D가 일반적인 요즘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2D로 작품 속 세계를 묘사한 점도 묘한 매력을 풍긴다.
한 감독은 "작품의 주제도 그렇지만 (그림체도) 사람의 손맛이 느껴지는 아날로그를 좋아한다"며 "앞으로도 2D 애니메이션을 지향할 것 같다"며 웃었다.
'만화방 손녀'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만화책을 보며 자랐다는 그가 2D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를 처음으로 전율하게 한 애니메이션 영화도 2D로 만들어진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1997)였다.
한 감독은 "그때부터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꿨다"며 "여러 작품을 보며 대학교에서도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활동하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독립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와 비교하면 '이 별에 필요한'을 작업하며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떠올렸다.
"인디 규모로 작업했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타협해야 했을 거예요. 제가 한 모든 애니메이션 작품은 제작 과정이 지난했고 (제작비로 인해) 타협도 많이 했죠. 이번엔 비주얼만큼은 타협을 덜 했어요. 이 작품이 어떤 포맷으로 공개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로맨스 애니메이션은 세계적으로 잘 없는, 도전적인 장르에요. 오히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여서 이 작품을 택해줬다고 생각합니다."
넷플릭스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은 덕인지 목소리 연기자로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김태리와 홍경도 캐스팅할 수 있었다.
한 감독은 "두 분 각각의 개성이 난영과 제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정을 쏟아줘서 협업 과정이 매우 즐거웠다"고 기억했다.
이어 "'이 별에 필요한' 같은 한국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 신진 창작자들이 '아, 내 꿈을 계속 좇아가도 되겠구나' 하고 생각하면 좋겠다"며 "한국 애니메이션계가 이제 막 개성과 다양성을 갖춰나가는 단계인 만큼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