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트릭스·플레이브에 AI밴드까지…주류로 우뚝 선 가상 가수들
작성자 정보
- 먹튀잡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5 조회
- 목록
본문
'케데헌' OST 빌보드 싱글 6위·멜론 1위…K팝 여름 성수기 승자
음원차트 점령·앨범 밀리언셀러 달성에 대규모 콘서트 개최
"기술 극대화한 영상·자유로운 세계관 강점…기획사는 위기감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Golden)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6위에 오르며 상승세다. 이 곡은 국내 음원 플랫폼 멜론의 '톱 100'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
# 가상(버추얼) 그룹 플레이브가 지난 2월 발표한 '대시'(Dash)는 쟁쟁한 K팝 스타를 제치고 멜론에서 상반기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노래로 기록됐다. 이들은 지난 9일 일본 데뷔 싱글 '가쿠렌보'를 하루 만에 19만장 이상 팔아치우며 오리콘 싱글 차트 1위에도 올랐다.
가요계 성수기로 꼽히는 올여름 시장에 가상 가수 열풍이 거세다. 과거 일부 마니아 사이에서 소비되던 이들은 이제 '변방'에서 벗어나 '주류' 콘텐츠로 흥행하고 있다.
15일 가요계에 따르면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앨범은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3주 연속 순위를 끌어올리며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멜론 '톱 100' 차트에서도 작품 속 헌트릭스가 부른 '골든'이 1위, 사자 보이즈의 히트곡 '소다 팝'(Soda Pop)이 3위를 기록했다. 에스파와 블랙핑크 등 대형 걸그룹의 기세를 뚫고 올여름 K팝 시장의 진정한 승자는 헌트릭스와 사자 보이즈라는 말까지 나온다.
플레이브는 앞서 올해 2월 세 번째 미니앨범으로 지상파 TV 음악 프로그램 1위와 첫 주 음반 판매량 100만장을 달성했다. 이들은 기세를 몰아 다음 달 15∼17일 가상 아이돌 최초로 톱스타만 설 수 있다는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3일에 걸쳐 단독 콘서트를 연다.
가상 걸그룹 이세계아이돌은 지난 5월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연장인 고척스카이돔 무대에 서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지난달 데뷔곡 '플로팅 온 에코'(Floating on Echos)로 스포티파이 유럽 차트 상위권에 오른 밴드 '벨벳 선다운'이 알고 보니 얼굴부터 목소리까지 AI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됐다.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는 가상 가수의 인기에 대해 "과거에는 이러한 콘텐츠가 마이너 취향으로 받아들여졌다면, 요즘은 각자의 취향이 다변화·세분화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헌트릭스나 플레이브는 인공지능(AI) 목소리가 아닌 실제 사람이 노래하는 것이어서 팬들이 캐릭터 뒤에 있는 이들의 숨겨진 서사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며 "100% 가상이 아니라, 캐릭터와 실제 사람의 감성과 숨결이 연결돼 있다는 그 지점을 통해 팬들이 실제 가수를 좋아하듯이 몰입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상 콘텐츠의 특성상 가수의 세계관을 풀어내기 용이하다는 점도 인기에 한몫했다.
K팝 기획사들은 그룹에 특화한 서사를 부여하고 팬덤의 호기심을 끌어내고자 저마다 세계관을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엑소가 데뷔 초 멤버별로 초능력 설정을 둔 것이나 엔하이픈이 웹툰으로 독특한 뱀파이어 스토리를 이어 나가는 것이 그 예다.
하지만 실제 사람이 기반인 통상의 아이돌 그룹은 이 세계관을 매끄럽게 펼쳐내기가 쉽지 않고, 팀의 연차가 쌓일수록 멤버들과 팬덤의 심리적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상 가수는 캐릭터라는 '옷'을 입혀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어 플레이브가 '아스테룸'이란 가상 공간에서 지낸다든지, 헌트릭스가 목소리로 악귀를 퇴치하는 혼문을 만든다는 등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낼 수 있다.
가상 가수들의 인기에는 모션 캡처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연을 송출해도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기술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다수의 가상 아이돌 공연을 연출한 김영민 감독은 "가상 가수는 K팝 그룹의 세계관을 활동 내내 자연스럽게 가지고 갈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며 "이제는 섬세한 동작이 요구되는 밴드 연주도 실시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다. 이르면 내년 혹은 그 이후에는 캐릭터 같은 외모 말고는 실제 가수와 똑같이 활동하는 가상 가수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상 가수의 성공은 전통적인 K팝 기획사들에 새로운 도전으로 다가온다. '원석'을 찾아내 수년간 집중적인 훈련을 거쳐 데뷔시키는 업계의 '공식'과 전혀 다른 메커니즘을 따르기 때문이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가상 가수는 실제 노래하는 사람의 연령이 중요하지 않고, 이미 한 번 데뷔했던 사람이어도 상관없다. 음악 장르나 멤버의 국적도 자유자재로 확대할 수 있고, 사생활 논란 등 매니지먼트에 따르는 리스크도 적다"며 "K팝이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는 점을 느낀다. 수년을 쏟아부어 겨우 한 팀을 데뷔시키는 기획사 입장에선 위기의식도 든다"고 말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다만 "'케이팝 데몬 헌터스' 사례는 마치 '겨울왕국' OST가 히트한 것처럼 영화 주제가가 인기를 끈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플레이브나 이세계아이돌이 차트에서 성과를 냈지만 아직 대중적인 히트곡을 내진 못했다. 공고한 팬덤은 커졌지만 대중의 마음에 자리 잡지는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