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권과 교차하는 브라질 군사독재의 기록…'아임 스틸 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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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살레스 감독…美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작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해변에서 공놀이하는 아이들과 온몸에 모래를 묻히며 뛰노는 강아지가 만드는 평화로운 풍경 사이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 온다.
해변 도로엔 군인들이 가득 탄 군용 트럭도 지나간다. 그늘에 앉아 음료를 마시던 어른들은 문득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군인들을 쳐다본다.
1970년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바닷가 주택에 사는 유니스(페르난다 토레스 분)와 루벤스(셀튼 멜로)는 아이 다섯 명을 키우는 사이 좋은 부부다. 이들은 긴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식사를 하고, 축하할 일이 생기면 음악에 춤을 추곤 한다.
그러나 이 아늑한 풍경은 오래가지 않는다. 전직 국회의원인 루벤스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경찰에 끌려간 뒤 소식이 끊어진 것.
브라질 군사독재 정권의 '강제 실종' 정책이 평범한 가족의 삶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순간이다.
어머니와 딸마저 경찰 조사를 받고, 사복 경찰이 집 근처에서 밤낮으로 감시하며 가족의 일상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배구 훈련에 열을 올리던 딸, 동네 친구들 사이 '축구 에이스'였던 어린 아들은 자연스레 꿈을 포기하고, 새집을 짓겠다는 가족의 계획도 물거품이 된다.
가족의 행복한 순간을 담아두기 위해 찍었던 사진들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부각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는 기록이 됐다.
유니스는 어린 자식들 앞에선 상실감과 분노를 억누르고 애써 웃음 짓는다. 그러면서도 남편 실종의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투지는 끝까지 놓지 않는다.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내세운 군사정권의 정치적 탄압과 납치·고문, 언론 통제 등은 유신체제 아래의 한국과 놀라울 정도로 겹친다. 투사가 된 유니스와 일찍 철이 든 자식들의 표정에 관객들은 한국 현대사와 연결되는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아임 스틸 히어'는 남편이 실종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하는 여성의 일생을 그린 월터 살레스 감독의 영화다. 실존 인물인 유니스 파이바의 아들 마르셀로 파이바가 출간한 회고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파이바 가족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살레스 감독은 이들의 바닷가 주택에 경찰이 들이닥치는 과정 등을 생생히 목격했다고 한다.
음악이 흐르던 집이 침묵에 잠기고, 해변을 향해 늘 열려 있던 대문이 굳게 닫히는 모습을 충격적으로 지켜본 살레스 감독은 이 기억에 현실감 부여해 영화에 녹여냈다.
파이바 가족이 살던 집과 가장 비슷한 바닷가 주택을 찾아내고, 실존 인물들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데에도 1년 가까이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파이바 가족의 끈끈하고 화목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실제로 모든 배우가 촬영 전 바닷가 주택에서 한 달간 같이 지냈다고 한다.
섬세한 연출과 탄탄한 연기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과 제8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페르난다 토레스), 제81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20일 개봉. 137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