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과 퀴어의 교차점에서 만난 보편성…영화 '3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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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감독 장편 데뷔작…전주국제영화제 4관왕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퀴어(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3670'은 '종로3가역 6번 출구 앞에서, 저녁 7시에 만나자'는 뜻이다.
보통 특정 집단 안에서만 쓰이는 은어들은 그 뜻을 모르는 이들을 소외시키기 마련이다. 말뜻을 아는 이들과 모르는 이들을 명백하게 구분하고, 서로를 '통할 수 없는 타인'의 범주에 넣곤 한다.
하지만 영화 '3670'에서는 정반대의 효과를 낸다. 영화 속 인물들과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아내 공감하게 만들고, 자기만의 틀에 갇히기보다 세계를 더 넓혀준다.
영화 '3670'은 탈북자이자 성소수자인 청년 철준(조유현 분)이 퀴어 커뮤니티라는 새 세상에 들어가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 박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올해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4관왕에 오르며 최다 수상작이 됐고, 디아스포라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춘천영화제 등에도 잇따라 초청됐다.
철준은 한 퀴어 커뮤니티 모임에서 동네 이웃 영준(김현목)을 만나며 종로3가, 이태원에서 열리는 퀴어 모임에 점차 적응해간다. 겉도는 듯하다가도 자기만의 속도로 집단의 일원이 되고, 질투와 동경, 사랑, 우정 등 여러 감정이 섞여 있는 관계를 서툴게 겪는다.
철준이 보내는 일상은 성소수자나 탈북민이라는 범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대입 자소서가 써지지 않아서 애를 먹는 입시생이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고, 듬직한 동생이자 축구 게임을 같이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시샘이나 그리움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게는 모임에서 겉도는 존재감 없는 한 명일 뿐이다.
성소수자와 탈북민이라는 이중의 소수자성을 가졌다고 해서 대단히 남다른 일상을 사는 게 아니란 걸 영화는 담백하게 보여준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성소수자 혐오 등 전형적인 갈등 요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영화의 특징이다.
'3670'은 혐오와 우울을 넘어서 관계에 대해 누구나 하는 보편적인 고민을 담아 공감을 자아낸다.
서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는 영준과 철준의 관계는 애태우며 응원하게 되고, 잘생긴 '인기남' 현택(조대희)의 소외감과 불안까지 짐작해보게 된다.
탈북민과 퀴어라는 두 요소가 가진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도 세계를 확장하는 즐거움을 준다.
성소수자나 탈북민은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이 아니기에, 스스로 의도하기만 한다면 이성애자나 남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할 수 있다. 존재를 감춘다는 것은 적응의 전략이기도 하지만 소외감을 키우는 맹점도 있다.
박 감독은 "위장이 가능함에 따라 발생하는 긴장감이, 두 커뮤니티가 작동하는 방식을 유사하게 만든다고 생각해 영화 안에 묶어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9월 3일 개봉. 124분.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