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연상호 "위기감에 만든 2억원대 영화…중독될 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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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자신이 만든 만화 영화화…"마지막 장면이 논쟁의 시작점"
"대세 될 팬덤 영화, 모난 구석 있어야 돼…어떤 방식으로든 창작이 중요"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영화 '얼굴'은 제작 소식이 전해질 때부터 그 방식으로 많은 관심을 모았다.
순제작비가 2억원대로 지난해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평균 순제작비(3억원)에도 못 미치는 저예산 영화라는 점에서다. 촬영 기간도 3주로 통상 장편 영화의 4분의 1에 불과했고 스태프도 20여명의 소규모로 꾸렸다.
'얼굴'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새로운 실험에 나선 이유로 위기감을 꼽았다.
"초등학생인 저희 딸이 유튜브를 많이 봐서 저도 같이 보는데요, 재밌더라고요. 예산도 제가 어렸을 때 보던 어린이 드라마보다 적고 제 입장에선 퀄리티(질)가 좋지도 않은 것 같은데, 딸 입장에서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재밌으면 되더라고요. 거기에서 제가 위기감을 느꼈죠."
연상호 감독은 15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다"며 '얼굴'의 제작 계기를 들려줬다.
'얼굴'은 연 감독이 2018년 직접 쓰고 그린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시각장애를 가진 전각(篆刻) 장인 임영규(권해효 분)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 만에 백골로 돌아온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얼굴'이 영화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불씨가 됐다. 사실 '얼굴'은 연 감독이 각본을 쓰고 영상화를 먼저 시도한 작품이다.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아 만화로 만들어졌고 그 이후에도 영화로 제작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연 감독은 아내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됐다.
"'얼굴'과 비슷한 내용인데 재밌어서 1시간을 몰입해서 봤어요. 영화에 비해 예산이 적은데도 불구하고요. 예산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연 감독은 아내가 '당신 돈으로 만들어봐라'라는 말에 충동적으로 제작을 추진했다. 에드워드 양, 구로사와 기요시 등 아시아의 전설적인 영화감독들이 저예산으로 명작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연 감독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그렇게 해서 연 감독 방식에 동의한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여 '얼굴'이 제작됐다. 촬영 회차 수와 배우들의 출연료를 줄이며 예산을 절감했다. 다만 스태프들이 받는 일당은 일반 상업영화와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영화는 만화에서 옮겨지며 주제 의식을 나타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각색됐다. 임동환의 전사(前史)는 줄이고 배경이 되는 장소도 축약됐다. 대신 정영희 캐릭터의 주체적인 면모는 강조됐다.
영화로 옮겨지며 변하지 않은 핵심 중 하나는 결말에 정영희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 내내 관객에게 보이지 않던 정영희의 얼굴은 결말에 이르러서야 공개되고 관객들에게 여운을 남긴다.
연 감독은 "정영희의 얼굴이 어떤 얼굴인지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논쟁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며 "'누구의 얼굴도 아니면서 어딘가에 존재할 것 같은 얼굴'이면 좋겠다고 컴퓨터그래픽(CG) 팀에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연 감독은 소규모 스태프로 꾸린 덕에 기동성 있는 제작이 가능했다면서, 이번 제작 방식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작업하면서 '(이번 방식에) 중독될 것 같은데'라는 말을 많이 했다"며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처럼, 배우, 스태프와 회의해서 결론 내고 하는 과정이 재밌었다"고 돌아봤다.
연 감독은 기존 상업영화의 제작 방식으로는 비슷한 영화가 양산되고 있다며 아쉬움도 비쳤다.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은 부분을 덜어내면서, 영화가 가지는 개성이 줄어든다는 지적이다.
"영화를 기획하고 최종적으로 내놓는 과정에서 투자·배급사들은 불호(不好)를 줄이는 것을 제시해요. 저는 그게 재미가 없더라고요. 영화는 모난 구석이 있어야 관객에게 던져지는 게 있는데. 결과적으로 이거 깎고 저거 깎다 보면 비슷해질 수밖에 없어요."
연 감독은 향후 팬덤 문화를 형성하는 모난 영화가 향후 대세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제작 방식이 대안을 상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되길 희망했다.
"팬덤이 강해지는 뾰족한 영화가 트렌드가 될 거라고 봐요. 근데 팬덤화되려고 하면, 위험성이 커질 수밖에 없죠. 그러면 비용을 낮춰야 하는 거고요. 예전 일본 영화계가 그런 식으로 'J-호러' 시대를 열었어요. 영화 발전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올 수 있습니다."
연 감독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한국 영화계 창작자들에게 "영화든 유튜브든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하는 게 중요하다"며 끊임없이 창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남겼다. 그는 넷플릭스 일본 오리지널 시리즈 '가스인간'의 총괄 프로듀서와 각본을 맡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에는 소설가 오성은 등과 함께 '블랙 인페르노'라는 소설도 펴냈다.
연 감독은 "'가스인간'은 제 개인적으로 도전이었다. 일본 배경의 일본 배우가 연기하는 작품의 각본을 쓴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며 "일본에서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고 기대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