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울림 김창훈, 詩에 音 붙여 1천곡…"시의 은혜에 음률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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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평일엔 매일 한 곡 만들어 유튜브 업로드…열 곡 추려 앨범도 발매
내달 15일 단독 공연…"詩는 글로 된 보석, 나를 만나고 치유하는 과정"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2025.10.26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운이 좋게도 시의 은혜가 제게도 닿아서 음률(音律)이 그치지 않고 쏟아져 나왔어요.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요."
밴드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69)은 지난 2021년 5월 음악을 위한 글감을 찾다 우연히 시집을 손에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불꽃이 튀는 듯했다.
지인이 추천한 원로 시인 정현종의 대표작 '방문객'을 한 글자 한 글자 필사해 내려가자 음률과 운율이 폭포수처럼 '콸콸' 흘러나왔다.
그렇게 매주 월∼금요일 평일이면 하루도 쉬지 않고 시 한 편에 노래를 붙이는 대장정이 시작됐다. 그의 노래는 송유미의 '당신, 아프지마', 김영춘의 '숭어 한 마리' 등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4년 1개월 만인 올해 6월 이어령의 '정말 그럴 때가'로 1천곡 금자탑이 완성됐다.
김창훈은 지난 24일 자신의 회화 전시회가 열린 서울 종로구 갤러리 마리에서 연합뉴스와 만나 "지난 4년은 시에 푹 빠져서 그와 동무가 된 시간이었다"며 "1천곡을 완성하고 '아 됐다'하는 안도감과 감사가 교차했다. 이 긴 여정을 동행해 준 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고,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고 보람과 성취를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시에는 예측불허의 매력이 있다. 각자 오롯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 변화무쌍한 특징이 있다"며 "나 역시 시구를 통해 많이 배웠고, 이번 경험으로 작곡 내공이 이전보다 나아졌으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창훈은 지난 1977년 형 김창완, 동생 김창익과 함께 우리 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밴드 산울림으로 데뷔했다. 30년 넘도록 식품업계에 종사하며 50년 가까이 음악을 해 온 그에게도 매일 노래를 한 곡씩 만들어 유튜브에 직접 업로드하고 편집까지 해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마치 천천히 먹을 갈아 붓글씨를 쓰는 것처럼, 수년에 걸쳐 돌에 정을 대어 조각품을 만드는 것처럼, 기나긴 여정 자체가 하나의 수행처럼 보이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의 그림은 직접 그린 것이다. 2025.10.26 [email protected]
그는 "좋은 시를 통해 나 자신을 만나고, 나를 치유하고, 나를 회복시키는 과정이었다"며 "1천개의 시를 만나면서 내 삶을 되돌아봤고, 시를 마주하며 내 인생을 반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시를 젊은 시절에 만났다면 어땠을지 하는 생각도 해 봤다"고 말했다.
이어 "시는 글로 된 보석과도 같다. 이 아름다운 보석들을 세상에 선물한 시인들에게 나의 멜로디가 헌사가 됐으면 한다"며 "매일 8시간 동안 곡을 쓰고 멜로디를 외우고 영상을 편집했다. 1천곡을 만들었으니 8천시간을 쏟아부은 셈인데, 다시 하라면 엄두가 안 날 듯하다"고 덧붙였다.
10곡, 100곡도 아닌 1천곡을 만들다 보니 김창훈은 자기도 모르게 같은 멜로디를 사용할까 봐 한 번 완성한 곡은 두 번 다시 듣지 않았다고 했다. 특히 한 시인당 한 작품만 사용하는 나름의 원칙을 고수하느라 1천명의 시인을 찾아내야 했는데, 여긴 힘든 일이 아니었단다. 이 때문에 시인으로 활동하는 맹문재 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도움을 받았다.
김창훈은 "맹 교수가 1890년대 태어난 여류 시인으로 시작해 일제강점기와 1960∼80년대 등 시대에 따라 긴 시인 목록을 줬다. 그분들의 작품을 찾아 보고 시를 골라냈다. 시는 원문 그대로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노래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며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폰으로 바로 검색할 수 있었기에 1천곡 작업이 가능했다. 아날로그 시대였다면 서점에서 어느 세월에 일일이 시를 찾아냈겠느냐"라고 설명했다.
그는 1천곡 완성을 기념해 이 가운데 10곡을 추려 기념 앨범 '당신, 아프지마'도 발표했다.
앨범에는 '방문객'(정현종), '오리'(우대식), '저물녘'(길상호), '정말 그럴 때가'(이어령), '묘생2'(이용한) 등의 시에 멜로디를 붙인 곡들이 담겼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산울림의 베이시스트 김창훈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경의 그림은 직접 그린 것이다. 2025.10.26 [email protected]
김창훈은 여기에 더해 다음 달 15일 서울 강남구 거암 아트홀에서 이 같은 시 노래를 선보이는 단독 콘서트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도 연다. 공연명은 앨범을 여는 첫 번째 곡인 정현종의 시 '방문객'에서 따 왔다. 약 반세기에 걸친 음악 여정에서 밴드나 팀이 아닌 오롯이 홀로 기타를 메고 단독 콘서트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만든 시 노래와 '회상'·'독백' 등 산울림 히트곡을 아울러 25곡을 들려줄 계획이다. 공연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닌 시라며 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가급적 박수도 삼가달라고 부탁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공연의 목표는 시를 같이 향유해 여운을 남기는 겁니다. 이 무대가 하나의 씨앗이 되어 모두가 시를 음미하게 된다면 보다 아름다운 사회가 되리라고 믿어요. 내년에는 소규모로 전국투어도 열어서 시의 향기를 각지에 내뿜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