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란 결국 몸에 남는 감각"…류승완 감독 영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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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베를린' 등 연출…"괜찮은 영화 하나 더 만들고 싶어"
상영 중인 '휴민트'는 "실험이자 고백…분기점이 될 영화"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좋은 영화란 관객이 극장을 나서며 '아, 정말 제대로 봤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영화다. 나에게 좋은 영화의 기준은 기술도, 철학도 아니다. 몸에 남는 감각, 그게 전부다."
'베를린'(2013), '베테랑'(2015), '모가디슈'(2021), '밀수'(2023) 등 화려한 대표작 리스트를 자랑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 철학을 담은 에세이 '재미의 조건'(은행나무출판사)이 출간됐다.
류 감독은 인터뷰어 지승호와의 대화를 토대로 엮은 이 책에서 "'좋은 영화가 따로 정해져 있을까? 라고 늘 반문하게 된다"라면서도 관객에게 최상의 경험을 주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늘 노력한다고 밝혔다.
1996년 단편 영화 '변질헤드'로 데뷔하고 첫 장편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부터 이름을 알린 류 감독은 영화를 만든 지 30년이 넘었고, 그가 만든 영화사 '외유내강'도 지난해 20주년을 맞이했다.
류 감독에게 영화는 더 이상 세상을 바꾸거나 감독 자신을 드러내는 도구는 아니지만, '괜찮은 영화'를 하나 더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하다고 한다.
그는 "내 영화를 보고 뿌듯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며 "그저 괜찮은 영화를 하나 더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움직인다"고 담담하게 전했다.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영화 속 명대사들의 탄생 배경도 소개한다.
'베테랑'에서 형사 서도철(황정민 분)이 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대사는 고(故) 강수연 배우가 (동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고, '부당거래'(2010)의 검사 주양(류승범)이 뱉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알아요'는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가 탈무드에서 가져온 구절이라고 한다.
류 감독은 "한 번도 명대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며 "대부분의 대사는 그저 인물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들이었다"고 돌아봤다.
감독으로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하는 사소한 생각들을 공유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은 생생한 영화 속 캐릭터들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류 감독은 "남들이 잘 들여다보지 않는 엉뚱한 지점이 궁금하다"며 "특수요원이 작전 중에 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티슈는 챙겼는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은 없을지, 그런 게 자꾸 궁금하다"고 썼다.
이어 "작고 엉뚱한 궁금증, 디테일에 대한 집요함이 인물을 더 현실적으로 만든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 '휴민트'는 뜻밖에도 류 감독에게 분기점이 될 영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예전엔 젊은 에너지로 밀어붙이고, 거칠게 튀고, 자극을 더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런 방식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며 "이번엔 의도적으로 자극을 많이 뺐다"고 설명했다.
대중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법이나 화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도 과감히 했다고 한다.
특히 총소리나 싸우는 이들의 음성을 지워 관객마저 숨소리를 낮추게 하는 후반부 전투 장면은 "예전의 나였으면 절대 못 했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류 감독은 "액션이 단순한 '대결'이 아니라 외로움, 흔들림, 관계의 균열과 맞물려야 한다고 느꼈다"며 "'휴민트'는 내게 실험이면서 동시에 고백이다"라고 털어놨다.
3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