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축구] ④결격 사유 임원들 버젓이…연맹 행정 체계적으로 쇄신해야(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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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연맹 임원진에 규정상 결격 인사 최소 4명…축구협회도 인지 못 해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설하은 기자 = 우리나라 여자축구 책임 기관인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정관상 자격 없는 인사들을 수년째 임원으로 선임해온 걸로 드러났다.
연맹은 종목 위상이 낮은 현실에서 고육책이었다는 입장이나 이제부터라도 행정을 체계적으로 쇄신해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28일 국세청 공익 법인 공시에 등재된 여자축구연맹의 임원 명단을 보면 오규상 회장 등 14명 가운데 적어도 4명이 규정상 부적격자다.
연맹 자체 정관에 따르면 경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현직 지도자 등은 임원에 오를 수 없지만 여자축구 실업팀과 고등부팀 감독이 이사로 등재됐다.
더불어 대한축구협회가 적용하는 '전국연맹표준규정'상 시도축구협회 임원은 연맹 임원을 겸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울산광역시와 제주특별자치도 협회 소속 임원이 연맹 임원진에 포함된 걸로 파악된다.
연맹의 임원 선임은 대한축구협회 인준을 받아야 하나 협회는 이런 정황을 인지하지 못한 걸로 드러났다.
취재가 시작되자 사태 파악에 나선 협회 측은 결격 임원을 가릴 자료를 수년째 연맹으로부터 제출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연맹이 이사회를 하고 나서 우리 측에 낸 자료가 있는지 봤으나 적어도 최근 5년간 제출된 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맹은 그간 이사회 명단을 꼬박꼬박 제출해왔고, 이를 검수한 최종 주체는 협회라는 입장이다. 다만 자체적으로 규정을 자세히 알지 못해 착오가 생겼다고 인정했다.
오히려 연맹은 현 이사회 상황이 여자축구의 낮은 위상을 보여주는 극히 일부분이라고 판단한다. 아무리 찾아도 임원을 맡겠다는 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오규상 연맹 회장은 "여기저기에 사정해도 기부금 부담에 임원 자리를 사양한다. 그래서 중, 고등학교 현직 지도자라도 이사로 넣어야 했다"며 조직 사유화 등 부적절한 의도는 없다고 밝혔다.
시도 협회 임원들의 경우, 여러 팀이 원활하게 지방 전지훈련을 소화하도록 돕기 위한 인사 안배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오 회장은 "예컨대 제주도로 전지훈련을 가는데, 거기에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다"며 "그래야 우리가 미비한 점이 있을 때 그쪽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맹 부회장 가운데 축구 행정·산업과 무관한 '지역 인사'도 있다.
여자팀들이 동계훈련지로 자주 찾는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관계자로, 오 회장의 지인이다. 덕분에 전지훈련 시 선수들이 편의를 본다는 게 오 회장의 설명이다.
연맹 측의 설명대로 고육지책이었다고 해도 수년째 이사회가 이같이 운영돼온 건 '행정 고도화' 측면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행정 난맥상으로 비판받는 축구협회도 각 인사의 전문성을 살려 임원진을 꾸린다.
한준희 해설위원을 홍보 담당 부회장, 지도자 경력 30년이 넘는 장외룡 감독을 기술 담당 부회장으로 선임하는 게 단적인 예다.
이외 각 분야에 정통한 인사를 윤리·공정·심판위원장 등 분과위원장으로 둬 조직을 이끌어가게 배치했다.
반면 여자축구연맹 수뇌부에는 마케팅·홍보·재무·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등 여자축구 저변확대에 필요한 전문 인력이 없다.
정부 보조금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연맹은 사무국 인원도 4명뿐인 사정상 조직 구성에 힘을 쓸 여력이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주요 여성 스포츠로서 여자축구가 품은 잠재력을 끌어내려면 이사회가 경기인 위주의 인적 구성에서 탈피해 여자축구연맹의 행정을 바로잡을 필요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천=연합뉴스) 홍기원 기자 = 5일 경기도 이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평가전 대한민국과 필리핀의 경기.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선수들을 격려한 후 들어가고 있다. 2024.4.5 [email protected]
TV 예능프로그램 '골때리는 그녀들'로 시작한 생활 체육 흥행, 국제축구연맹(FIFA)의 대대적인 여자축구 장려 방침, 여성 스포츠가 '블루오션'으로 제시되는 산업 추세 등 국내외에서 조성된 분위기를 살리지 못하는 현실에 반성적으로 접근하자는 취지에서다.
축구협회도 산하 회원단체 관리 부실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여자축구연맹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계도할지는 협회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자축구 행정 정비는 연맹뿐 아니라 축구협회의 당면 과제이기도 하다.
연맹(각급 유소녀 팀·실업리그)과 협회(대표팀·생활체육)로 쪼개진 현행 '이중 행정'은 학계 등에서 일관되게 여자축구 발전 정체의 배경으로 거론된 만큼 연맹과 관계 설정이 특히 중요하다.
정몽규 축구협회장은 세 번째 임기를 여는 2021년 취임사에서 가장 먼저 여자축구 발전을 약속했으나 지난 7월 대표팀이 A매치 기간 경기 없이 '휴업'하는 등 최근 행정은 아쉬움을 남겼다.
당시 정 회장은 "여성의 축구 참여 확대가 축구 산업 다변화와 등록인구 증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지난해 5월 여성 체육 전문가인 원영신 연세대 명예교수가 여자축구를 책임지는 부회장에 올랐으나 이후 1년 5개월 동안 드러난 뚜렷한 대외 행보는 없다.
협회가 공개한 회의록에 따르면 원 부회장은 선임 이후 열린 9차례 이사회 가운데 한 번도 참석한 적이 없다.
신상우 신임 여자축구대표팀 선임을 서면으로 의결한 최근 이사회 참석자 명단에도 원 부회장의 이름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