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축구] ①창녕WFC 해체 갈림길…위태로운 WK리그 8팀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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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운영하는 여자축구연맹 재정난…축구협회 지원에 올해 겨우 버텨
골키퍼 줄부상으로 코치가 선수로 뛰기도…창녕WFC 힘겨운 한해 보내
[※ 편집자 주 = 국제축구연맹(FIFA)의 장려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여자축구 인기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흐름과 정반대로 위기라는 꼬리표를 떼어내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연합뉴스는 책임 기관의 행정 미비, 매력 감소에 따른 저변 축소 등으로 여자 축구의 힘겨운 실태를 담은 기획 기사 4건을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설하은 기자 = 창녕WFC가 창단 7년 만에 해체 갈림길에 서면서 2017시즌부터 이어온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8개 팀 체제가 깨질 위기에 처했다.
2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여자축구연맹은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와 만나 창녕WFC의 상황을 설명하고 운영 보조금을 요청할 계획이다.
연맹은 지원이 없다면 창녕WFC를 운영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창녕WFC는 여자실업축구 WK리그 명문으로 꼽히던 이천 대교가 2017년 돌연 해체하면서 2018년 창단됐다.
연고지는 경남 창녕군이지만 운영 주체는 여자축구연맹이다. 구단주가 오규상 연맹 회장이고 창녕군의 보조금·시설 지원을 받는다.
창단 시 대교 코칭스태프·선수단을 승계한 창녕WFC의 운영 자금 상당 부분을 연맹이 충당하면서 WK리그 8개 팀 체제가 유지됐다.
창녕군에 따르면 팀 운영에 최소 12억원가량이 들어간다. 창단 초기 3억원가량이었던 창녕군 보조금은 최근 6억원 수준으로 올랐다.
그런데도 몇 년 전부터 연맹 재정난 심화로 운영이 어려워졌다. 공익 법인인 연맹은 문체부 등의 보조금에 재정을 의존한다.
국세청 공익 법인 공시를 보면 최근 연맹이 받은 보조금 규모는 크게 줄었다. 2021년까지 매년 30억원가량 유지됐던 보조금은 2022년 25억원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20억원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후원사들도 이탈하면서 재정난이 심해졌다는 게 연맹 측 설명이다.
이에 연맹은 WK리그 타이틀 스폰서 비용을 높이는 등 애썼지만 여전히 구단 운영에 쓸 수억 원이 더 필요했고, 결국 축구협회에 손을 벌려 어렵게 올 시즌을 치렀다.
이처럼 수억 원을 받을 창구를 매년 따로 마련해야만 창녕WFC와 WK리그 8개 팀 체제가 유지되는 상황이다.
창녕군 역시 팀 성적이 매년 하위권에 머물면서 군의회에 더 많은 예산을 요청하기 어렵다고 한다.
군 관계자는 "현 6억원 수준이면 예산이 빠듯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스포츠 구단에 꽤 큰 비용을 들이는 것이라 봐야 한다"고 밝혔다.
WK리그는 경주 한국수력원자력이 참가한 2017시즌부터 8개 팀 체제였다. 창녕WFC 해체 시 2016시즌 이후 9년 만에 7개 팀만 경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성인 여자 선수들이 활약할 무대도 좁아진다.
7개 팀이 경쟁하던 2015년 WK리그 선수는 213명이었다. 8개 팀으로 확대된 이후에는 230명대로 유지됐다.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한 선수단은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올 시즌 일정을 모두 마무리하면서 구단 숙소에서 짐을 뺀 상태다.
최근 네 시즌 가운데 세 차례 꼴찌였던 창녕WFC의 올 시즌은 특히 힘겨웠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대형 유망주로 평가받는 이은영을 데려왔지만 28경기에서 2승 5무 21패에 그쳤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4 여자실업축구 W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선발된 창녕WFC 이은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12.14 [email protected]
골키퍼가 줄부상 등으로 이탈하면서 필드 플레이어인 이수빈이 골키퍼 장갑을 끼고 나선 경기도 있었다.
선수가 없어 코치가 다시 축구화를 신고 현장에 복귀하기도 했다. 2022년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하던 송아리 코치가 올여름 긴급 투입돼 제자들과 함께 몇 차례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달 26일 화천 KSPO와 리그 최종전에서도 송아리 코치가 골키퍼로 출전했다.
이 경기 초반 화천 선수들의 슈팅을 쳐낸 송 코치는 익숙하지 않은지 손에 통증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저변확대가 여자축구의 지상 과제로 꼽혀왔지만, 사실 WK리그를 포함한 생태계 전반의 부실한 실태가 창녕WFC 사태로 드러난 셈이다.
전업 선수들이 뛰지만, 프로가 아닌 실업 리그인 WK리그는 중계 등 자체 수입원이 없고, 관중 동원력도 떨어져 운영에 나서겠다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대한축구협회 통합전산시스템을 보면, 올 시즌 WK리그 한 경기 평균 관중은 261명이었다.
창녕WFC는 146명이었다. 공교롭게도 최다 관중팀은 군국체육부대인 문경상무로, 평균 455명이었다.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인천 현대제철의 평균 관중은 334명이었다.
유일하게 입장료를 받는 수원FC(183명)의 평균 관중도 200명이 안 된다.
별도 법인으로 분리되지 않고 직제상 기업·지자체 일부인 실업팀 특성상 여자축구연맹도 각 팀에 투자를 끌어내는 데 애를 먹는다.
연맹은 올 시즌 개막 전 각 구단에 강력하게 유소녀팀 운영을 요구, 이를 의무로 명시한 리그 운영 규정을 마련했으나 일부 팀의 참여를 끌어내진 못했다.
당시 서울시청 구단 관계자는 "직장운동경기부 특성상 유소녀팀 운영은 어렵다. 내부 규정을 검토해봤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연맹에서) 리그에 불참해야 한다고 하면 우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