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결산] ③과제로 떠오른 투수력 강화…아쉬운 아시아쿼터 제도(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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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국들은 '구속 혁명' 중인데…38세 류현진까지 투입한 허약한 투수층
아마야구 지원·육성 절실…"아시아쿼터로 국내 투수 무너질 것" 비관도
(마이애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한국야구대표 류현진을 비롯한 투수진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FIU 베이스볼 스타디움에서 열린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2026.3.12 [email protected]
(마이애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한국 야구대표팀은 17년 만에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진출에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남겼다.
특히 투수 육성은 반드시 풀어야 할 한국 야구 절체절명의 숙제가 됐다.
대표팀은 대회 전부터 마땅한 선발진을 꾸리지 못했다.
원태인(삼성 라이온즈), 문동주(한화 이글스), 안우진(키움 히어로즈)이 부상으로 승선하지 못하자 만 38세 류현진(한화), 36세 고영표(kt wiz) 등 베테랑에게 중책을 맡겼다.
한국 야구의 선발 투수층이 얼마나 허약한지 여실히 드러난 대목이다.
류지현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 선발 투수들은 이번 대회 1라운드 4경기에서 단 한 번도 3이닝을 넘기지 못했다.
소형준(kt)은 약체 체코와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해 3이닝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아마추어급' 타자들에게 안타 4개와 볼넷 1개를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두 번째 경기인 일본전에서는 선발 고영표가 2⅔이닝 동안 홈런 3개를 얻어맞아 4실점 하고 조기 강판했다.
대만전에선 류현진이 3이닝 3피안타(1피홈런) 1실점 하고 물러났고, 호주전 선발로 나선 손주영(LG 트윈스)은 1이닝을 던지고 팔꿈치 통증 탓에 교체됐다.
류현진은 도미니카공화국과 준준결승에 다시 선발 등판했으나 2이닝을 채 소화하지 못하고 일찍 마운드를 떠났다.
이번 대회에서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투수들의 객관적인 전력도 떨어졌다.
WBC 조별리그에서 한국 대표팀 투수들의 직구 계열 평균 구속은 시속 144.9㎞로 20개 팀 중 18위로 바닥권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153.4㎞)은 물론, 미국(151.9㎞), 일본(151.2㎞) 등 세계 강호들과 큰 격차를 보였고 대만(149.5㎞)보다도 크게 뒤졌다.
한국보다 직구 구속이 떨어지는 팀은 호주(144.4㎞), 체코(139.0㎞)뿐이었다.
경쟁국들은 최첨단 장비와 훈련 기법을 바탕으로 '구속 혁명'을 이뤄 투수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나 한국 야구 투수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도리어 예전보다 뒷걸음질 쳤다는 얘기도 적잖게 나온다.
(마이애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13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론디포파크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 대 도미니카공화국 준준결승전. 2회말 2사 1, 2루 한국 선발투수 류현진이 교체되고 있다. 2026.3.14 [email protected]
◇ 젖줄 마른 토종 투수…외국인으로 채우는 KBO리그
과거 한국 야구는 강력한 마운드를 앞세워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냈다.
4강 진출에 성공한 2006 WBC, 금메달을 차지했던 2008 베이징 올림픽, 준우승한 2009 WBC에선 모두 투수들의 활약이 빛났다.
박찬호, 김병현, 봉중근, 구대성, 류현진, 임창용, 오승환, 김병현 등 어디에 내놔도 믿음직스러운 투수들이 대표팀의 영광을 주도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수한 한국 투수들은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의 면면을 봐도 흐름이 드러난다.
1990년대 이후 출생한 한국 선수 중 MLB를 밟은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
반면 야수는 최지만, 김하성, 박효준, 배지환, 이정후, 김혜성 6명이 빅리거 명예를 얻었다.
KBO리그를 살펴봐도 토종 투수 문제는 심각하다.
202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3시즌 동안 평균자책점 상위 5위 안에 든 국내 선수는 2023년 안우진(당시 2위)뿐이다.
한국의 '사이영상'으로 불리는 최동원상 역시 외국인 투수들이 사실상 독식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8시즌 중 7시즌을 외국인 투수가 받았다.
이제는 KBO리그 개막전 선발 투수도 대부분 외국인 선수의 몫이 됐다.
지난해 개막전에서는 10개 구단 모두 외국인 투수를 선발로 내세웠다.
◇ 쓸만한 투수 없다는 KBO리그…아마추어 투수 육성 대신 아시아 쿼터로 해결
토종 선발 투수가 부족해지자 일부 투수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리고 지출 부담을 느낀 구단들은 토종 투수를 키우는 '어려운 길' 대신 '쉬운 길'을 택했다.
구단 대표로 이뤄진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는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반대에도 지난해 1월 2026시즌부터 아시아 쿼터 제도를 도입하기로 의결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대부분의 구단이 투수를 선택했다.
10개 구단 중 아시아 쿼터 선수로 야수를 뽑은 팀은 자유계약선수(FA) 내야수 박찬호(두산 베어스)를 놓쳐 내야 수비 공백이 생긴 KIA 타이거즈뿐이다.
나머지 9개 구단은 모두 투수를 선택했고, 이들 상당수는 선발 후보로 꼽힌다.
결국 각 구단은 5선발 가운데 3명을 외국인 선수로 채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국내 선발 투수의 자리는 크게 줄어들었다.
외국인 선수와 아시아 쿼터 제도는 리그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다.
이미 국내 여러 프로스포츠가 이런 과정을 겪었다.
농구는 외국인 선수 유입 이후 토종 센터가 줄어들면서 국제 경쟁력이 약화했고, 배구 역시 주 공격수 역할을 외국인 선수들이 도맡으면서 퇴보했다.
아시아 쿼터로 토종 투수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면 많은 유망주가 일찌감치 투수 대신 야수로 진로를 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아시아 쿼터는 저출산으로 허약해진 야구 저변을 더욱 취약하게 할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선수층 자체가 무너지면 어떤 해법도 공허해진다. 각종 고성능 장비와 과학적 분석을 활용해 투수 구속을 끌어올리는 '구속 혁명'도 답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한국 투수의 국제 경쟁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아시아 쿼터 제도를 원점에서 재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양준혁 해설위원은 지난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아시아 쿼터제를 시행하면 1~3선발을 모두 외국인 투수로 채울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국내 야구와 투수들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아시아 쿼터 제도 도입 대신 방치하고 있는 국내 아마추어 야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쓸만한 투수를 키워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